‘파란만장 34년 망명’ 접고 조국품으로

  • 입력 2008년 9월 8일 02시 55분


■ 오늘 귀향 최중화씨의 굴곡진 삶

反정부 부친따라 한국 등져 → 全 전대통령 저격미수 北도주 → 동유럽 전전하다 자수

34년 동안의 해외 망명생활을 접고 8일 귀국하는 최중화 씨의 삶은 한마디로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최 씨는 유신 반대 등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을 겪다 1972년 캐나다로 망명한 부친 최홍희 씨에 이어 1974년 한국을 떠났다. 부친은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하고 김일성 북한 주석과 가깝게 지냈던 최홍희 전 장군.

최 씨는 조국을 등진 부친과 함께 ITF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한편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동안 최 씨의 한국 입국이 금지됐던 것은 그가 전두환 전 대통령 저격미수 사건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 영상취재 : 정주희 동아닷컴 인턴기자

그는 1982년 캐나다를 방문하는 전 전 대통령 암살 계획을 세웠다가 사전에 이를 포착한 캐나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북한으로 달아났다. 당시 그는 주(駐)오스트리아 북한 대사관저에서 북한의 대남공작 담당 최승철로부터 캐나다 유대계 마피아 조직을 동원한 암살 계획을 지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그 후 체코와 폴란드 등 동유럽을 전전하다 부친의 요청으로 1991년 1월 캐나다로 돌아가 자수했다. 캐나다 법원은 그해 3월 6년 징역형을 선고했고 최 씨는 1년 정도 복역한 후 모범수로 출소했다.

이와 별도로 최 씨는 1981년 전 전 대통령의 방문 예정지인 필리핀의 한 골프장에서 그를 사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촉발된 광주민주화운동을 캐나다에서 TV로 지켜본 후 ‘의협심’이 발동한 것으로 신동아 8월호는 전했다.

최 씨는 부친이 총재로 있는 ITF의 사무총장을 맡아 부친과 갈등도 겪었다. 2001년 1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TF 임시총회에서는 총재 임기 연장 문제로 충돌을 빚었고, 그해 7월 이탈리아 총회에서는 차기 총재로 내정됐다가 내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의 인생 역정은 부친의 삶과 닮은꼴이다.

부친은 남한에서 제3관구 사령관 등을 지냈으며 1961년 당시 박정희 소장을 따라 5·16군사정변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과 사이가 멀어져 1962년 6월 제6군단장(소장)을 끝으로 예편했다. 이후 초대 말레이시아 대사와 대한태권도협회장을 지냈다.

부친은 1966년 3월 서울에서 ITF를 창설했지만 1973년 세워진 세계태권도연맹(WTF)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점점 활동 반경이 좁아졌다. 그가 캐나다로 망명한 1972년 이후에는 ITF의 영향력이 북한을 중심으로 한 비동맹국가에 국한됐다.

부친은 1980년 10여 명의 태권도 시범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했고, 북한에 태권도 붐을 일으킨 것을 인연으로 김일성 주석과 각별한 관계를 맺었다. 북한은 이후 ITF에 돈을 대주는 대신 태권도 사범의 해외 파견을 직접 관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ITF의 해외 파견 태권도 사범들이 사실상 북한 공작원이었다는 사실은 이에 근거한다.

20여 차례 북한을 찾은 부친은 북한 영화 ‘민족과 운명’ 시리즈에 주인공(차홍기)의 실존 모델로 나오기도 했다.

부친은 2002년 6월 평양에 위암 수술을 받으러 갔다가 병원에서 사망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조화를 보내 애도를 표했고 ‘사회장’으로 장례를 치른 뒤 평양 신미리 애국열사릉에 안장했다.

부친의 사망 후 북한은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내세워 ITF를 장악했다. 평양에서 추모회를 빙자한 긴급총회를 열어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총재로 추대한 것.

최중화 씨는 ‘장웅 총재’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별도의 ITF를 조직해 총재를 맡고 있다. 자신의 ITF 조직에 113개국 3500만 명의 회원이 가입해 있다는 게 그의 주장.

한편 함북 명천 출생인 부친의 형수와 조카는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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