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시절 한나라당은 코드인사, 보은인사를 자주 비판했다. 공기업 낙하산인사에 대해 한나라당은 “무자격자 낙하산인사야말로 공기업 부실을 심화시키고 국민경제와 국가경쟁력을 갉아 먹는다”고 질타하며 낙하산인사조사특위까지 만들었다. 그러던 한나라당이 요즘의 낙하산에 대해선 ‘대통령 철학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옹호하거나 입을 다문다.
攻守교대, 완전히 뒤바뀐 주장뿐
노 대통령이 2002년 대선 때의 언론특보 서동구 씨를 KBS 사장에 임명하자 한나라당은 “특보 출신의 방송사 사장 진출은 언론자유 훼손”이라고 비판했다. 현 정부가 MB캠프 출신을 방송 경영자로 앉힐 때 한나라당이 언론자유 문제를 거론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민주당의 전신(前身)인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편파인사를 함께 즐겼다. 여당 시절 이들은 “대통령은 자신과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인물을 등용해 성과를 낼 책임을 지고 있다”는 어록을 남겼다. 지금 민주당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 것조차 잊은 듯 ‘이명박 인사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요즘 민주당은 방송계 물갈이가 있거나 현 정부가 언론정책을 밝힐 때마다 ‘방송 장악, 포털 장악, 언론 장악’이라는 말을 쉽게 한다. 노 대통령은 방송을 손에 쥐고서도 모자라 일부 포털과 무가지를 비롯한 유사(類似)언론을 키우고 이용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의 사실상 모체인 열린우리당은 이를 옹호하기에 바빴다. 그뿐 아니라 열린우리당은 위헌적 신문법을 만들어 비판신문들을 무력화(無力化)하려 했고, 기자실 대못질 같은 취재 봉쇄를 방관했다.
한나라당은 ‘쇠고기 촛불시위’ 와중에 민주당이 장외(場外)를 떠돌자 “국회 등원 거부는 의회정치를 버리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그런 한나라당도 2005년 말∼2006년 초 사립학교법 파동 때 53일간 등원을 거부한 바 있다.
민주당은 수뢰 혐의를 받고 있는 김재윤 의원에 대한 수사를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체포동의안 처리를 거부했다. 2004년 선거법 위반으로 수사를 받던 한나라당 박창달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됐을 때 열린우리당은 박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에 반대한 동료의원들을 ‘반(反)개혁’으로 낙인찍었다. 이도 모자라 국회법을 개정해 ‘체포동의안 72시간 이내 표결’을 명문화했다. 이번에 민주당은 이 조항을 스스로 사문화(死文化)해 버렸다.
노 정권 아래서 경제지표가 안 좋게 나올 때마다 한나라당은 “아마추어들이 경제 망친다. 성장 동력이 꺼진다”고 개탄했다. 그러나 요사이 나빠진 경제지표에 대해 한나라당 사람들이 얼마나 진지하게 성찰(省察)하며, 근본적 해법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민주당은 정권을 내놓아야 했던 자신들의 정책실패와 그 후유증에 대해선 침묵하면서 이 정권의 실책만 과장한다.
정부가 시급한 민생안정 대책용으로 4조9000억 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추석 전 처리’를 외치고, 민주당은 “대폭 삭감해야 한다”며 발목을 잡는다. 지난 정권 때는 한나라당이 추경예산 편성에 제동을 걸었고,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이 경기 활성화의 발목을 잡는다”고 맞받았다.
여야(與野) 교체가 공수(攻守) 교대와 논리 교환을 가져왔을 뿐, 정치권이 초당적(超黨的)으로 함께 추구하는 공통의 가치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민을 위한 정치’를 입에 달고 살지만 각자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가치관을 손바닥 뒤집듯이 바꾼다. 우리 정치인들은 ‘내 편의 이익이냐, 네 편의 이익이냐’를 잣대로 반대와 배제(排除)를 일삼는 무정견(無定見)의 정치를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그러면 국민 이익은 누가 챙겨줄 것인가.
‘공통의 가치’ 복원해야 윈-윈 가능
미국 언론은 전당대회 바람을 타고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를 앞서기 시작한 공화당 대통령후보 존 매케인에 대해 지금도 무당파(無黨派·maverick)라고 즐겨 호칭한다. 매케인은 주요 현안에서 당 지도부의 생각과 달리 소신에 따른 발언과 투표를 하고, 민주당 의원들과 협력해 국회의 정치적 부패를 공격했다. 그런 소신이 오늘의 매케인을 만들어냈다.
하루아침에 화성당이 금성당이 되고, 금성당이 화성당으로 바뀌는 우리 정치현실에서 매케인 같은 원칙의 정치인이 나타나기는 아무래도 어려울까.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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