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원격행사 가능해도 예전같은 활동 어려울듯”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9월 11일 02시 58분


“회복세 보이는 건강 악화우려해 정권 60년 행사 불참

올들어 현장지도 무리한 행보… 재발 가능성 배제못해”

■ 金, 통치력 영향줄까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출혈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사실이 10일 정부 발표로 확인됨에 따라 그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거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질 가능성은 낮아졌다.

그러나 뇌출혈이라는 병의 특성과 ‘현장’을 찾아다니는 리더십 스타일에 비춰 김 위원장의 권력 행사 능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는 김 위원장의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북한 내부에 권력 투쟁이나 권력 공백의 징후는 감지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9일 정권 창건 60주년 기념행사를 오전이 아닌 오후에 개최한 것이 김 위원장의 회복세를 보여주는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정부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행사 참석이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면 사전에 북한 지도부가 행사를 취소했을 것”이라며 “김 위원장의 참석이 불발된 것은 자칫 회복세인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는 의료진의 조언을 따른 것으로 듣고 있다”고 말했다.

한 정보 당국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증상 정도를 사망과 의식불명, 중증(重症), 경증(輕症)으로 나눈다면 최근의 상황은 세 번째”라고 말했다.

이렇게 구분하는 기준은 김 위원장의 의식이 유지되고 있는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김 위원장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행사하는 데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능이기 때문이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의식을 할 수 없는 상태는 사망과 같이 취급된다. 의식이 있다면 이를 소통할 수 있는지에 따라 중증과 경증으로 나뉜다는 것.

현재로선 김 위원장은 이동이 불편하지만 휠체어를 이용할 수 있는 정도이고 의사소통이 가능해 ‘원격조종’을 통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인 것으로 정부는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이 조만간 ‘뇌출혈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가 활발한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김 위원장은 올해 들어 총 93회에 걸쳐 활발한 공개 활동을 해 건강에 무리가 왔을 정도라고 정보 당국은 밝혔다.

김 위원장은 1990년대 경제난 이후 특히 군부대와 공장, 기업소 등을 직접 찾아다니며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하는 이른바 ‘현지지도’를 통해 통치를 해왔다.

한 전문가는 “쉽게 말해 66세의 노인이 ‘풍’을 맞았다는 것인데 그 이전처럼 현장을 찾아다니며 통치 활동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며 “앞으로 최고지도자로서 통치 행위의 양과 질이 크게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뇌질환은 또 완치가 어렵고 재발 가능성이 높아 김 위원장의 증상이 언제든지 ‘의식은 있지만 이동이 불가능하고 말이나 글 등으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중증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의 회복이 늦어지거나 경증과 중증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김 위원장의 리더십이 크게 떨어지고 권력누수 현상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왼쪽 뇌 손상땐 언어장애

소뇌 이상오면 자꾸 쓰러져▼

■ 뇌중풍 증상은

전문가들은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랫동안 당뇨병을 앓아온 것으로 추정되고 아랫배가 볼록한 복부비만인 점을 볼 때 뇌중풍(뇌졸중·stroke)의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뇌중풍은 심혈관계 질환(협심증, 심근경색증 등)과 함께 대표적인 혈관질환으로 꼽힌다. 혈관질환은 당뇨병,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흡연 습관 등으로 인해 많이 발생한다.

뇌중풍은 혈관 속을 떠돌아다니던 혈전(피 찌꺼기)이 뇌혈관의 흐름을 막으면서 생긴다. 혈전이 관상동맥의 흐름을 방해하면 심근경색(심장발작)이, 다리로 혈액을 운반하는 말초동맥의 흐름을 방해하면 말초동맥질환이 생긴다.

민양기 한강성심병원 신경과 교수는 “김 위원장의 경우 몇 년 전부터 당뇨, 심장질환, 고혈압 등 건강이상설이 퍼져 있었고, 언뜻 보기에도 심각해 보이는 복부비만이 뇌중풍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뇨병, 심장질환, 고혈압이 있다고 모두 뇌중풍에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질환이 있으면 뇌중풍 위험이 일반인에 비해 최고 5배까지 커진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에게 뇌중풍이 왔을 경우 한쪽에만 왔을 수도 있고, 양쪽에 모두 왔을 수도 있다.

뇌중풍은 왼쪽에 왔느냐, 오른쪽에 왔느냐에 따라 증상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왼쪽 뇌에 손상이 오면 언어장애가 생길 수 있고 오른쪽에 마비가 생긴다. 오른쪽에 손상이 오면 왼쪽에 마비가 온다. 양쪽 뇌에 모두 손상을 받으면 전신마비가 올 수 있다.

만약 대뇌가 아닌 소뇌에 뇌중풍이 오면 어지럽고 균형을 잡기가 힘들며 걸을 때 자꾸 쓰러진다. 대뇌와 소뇌를 잇는 ‘뇌간’이라는 곳에 생기면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심한 경우 곧 사망할 수도 있다.

뇌중풍의 치료는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면 막힌 곳을 뚫는 치료를 받아야 하고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이면 고인 피를 빼주는 치료를 받아야 한다.

만약 김 위원장의 뇌중풍이 심한 정도라면 정상적인 집무와 외부활동은 힘들 것으로 보인다. 뇌중풍에 걸리면 회복되더라도 말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후유증이 생길 수 있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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