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회사 앞 진입도로가 비좁아 자재를 실어 나르는 대형 화물차 통행에 큰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뾰족한 수가 없을까요?”
6월 11일 오후 대구 북구 3공단 내 구일정밀 대표 사무실.
이 회사 이해석(60) 대표는 대구시 조극희(44·7급) 현장민원담당에게 “3공단 부근 조야교에 연결되는 회사 앞 왕복 2차로의 폭이 좁아 부근 업체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조 씨는 치수방재과 직원과 함께 현장을 둘러본 뒤 조야교 부근에 수문을 설치하면 도로를 넓힐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 씨의 건의를 받은 대구시는 이곳 도로 확장에 드는 사업비 10억 원을 마련해 올해 안에 도로 확장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2
2006년 11월 말 대구시 현장민원 지원팀은 60대 할머니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 할머니는 “신천 중동교 부근 둔치의 게이트볼장에 조명등이 없어 오후 늦게까지 운동을 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담당 공무원은 현장을 둘러본 뒤 한전 대구지사의 협조를 얻어 보름 만에 이곳에 조명등을 달아줬다.
지역 노인들은 이후 조명등이 환하게 켜진 신천 둔치에서 야간 게이트볼을 즐기고 있다.
이처럼 발로 뛰는 ‘현장 행정’이 대구를 몰라보게 변화시키고 있다.
대구시 공무원들은 기업의 애로사항 등을 일일이 해결해 주면서 대구를 ‘기업 하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가고 있다.》
업체 직접 찾아가 고충 듣고 해결책까지 마련
2년간 722건 접수 85건 해결-352건 대안 찾아
최근엔 생활분야로 확대… “주민들이 먼저 인사”
○ 기업 하기 좋은 도시 견인차
대구시의 현장 행정이 실시된 것은 2006년 7월부터.
대구시 경제통상국 산하 기업 현장민원팀으로 시작된 현장 행정은 현재 고객인 기업과 주민 중심의 행정 처리 시스템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현장을 발로 뛴다고 해서 담당 공무원들은 ‘민원특공대’로도 불린다.
2년여 전 취임과 함께 현장 행정을 지시한 김범일 대구시장은 “공직사회의 문턱을 낮추고 직원들이 기업인과 접촉하는 기회를 늘려 대구를 친기업 도시로 만들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대구시 기업 현장민원팀은 지역 업체의 고민이나 골칫거리를 전담 처리하는 ‘해결사’ 역할을 한다. 팀장인 사무관과 팀원(6, 7급) 등 2, 3명이 업체를 찾아가 애로사항이나 고충을 들은 뒤 신속하게 해결 방안을 찾아주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는 시장이나 정무부시장이 직접 나서 업체 대표자와 민원 관련 기관이 머리를 맞대고 간담회를 열기도 한다. 규제 관련 법규가 걸림돌이 되면 중앙 부처에 건의해 해결책을 모색한다.
그동안 722건의 건의사항을 접수해 85건을 해결하고 352건에 대해서는 민원안내를 통해 해결 방안을 찾아주었으며 227건은 정책에 반영했다. 나머지는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달성산업단지 자동차부품업체인 엠비성산 홍종찬(54) 사장은 “올해 5월 민원 담당 공무원에게 ‘공장 부근에 가로등이 부족해 야간에 퇴근하는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는데 대구시가 즉시 회사 부근 도로에 가로등 30여 개를 설치해 주고 보도블록도 교체해 주었다”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대구시는 지난해 전국 광역 및 기초지방자치단체 대상 ‘지방행정혁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현장 행정을 발표해 행정안전부 장관상을 받았다.
○ 주민 생활 민원도 척척
‘횡단보도 설치, 버스 승강장 이설, 가로등 보수….’
대구시는 기업 부문의 현장 행정이 상당한 성과를 보이자 복지와 교통, 문화체육, 자원봉사 등 시정 전 분야로 확대해 26개 팀 52명의 생활현장민원 지원팀을 운영 중이다.
전문성을 갖춘 각 분야 공무원 2명이 팀을 이뤄 주 1회 이상 재래시장, 공사장, 복지시설, 주택가 등 현장을 누비며 주민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하고 있다.
이들 생활현장민원 지원팀은 시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 있는 민원도 챙긴다.
대구 달서구 장동의 S업체는 회사 부근 레미콘 공장에서 발생하는 먼지로 전자제품 센서를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어오다 현장민원팀의 도움으로 방진벽을 설치했다.
또 대구 북구 속칭 번개시장의 상인들은 민원 공무원 덕분에 시내버스 승강장 안내방송에 번개시장을 소개하는 멘트를 포함시켰다.
대구시 이헌달 자치행정담당은 “현장 중심의 발 빠른 대응으로 민원을 신속하게 해결해줘 시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대구시 8개 구군도 현장 행정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체제를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 최근 2년간 국내외 25개 기업 유치
현장뛰며 얻은 정보가 단단히 한몫 ▼
대구시 공무원들이 산업 현장을 누비며 얻은 정보 등을 활용해 역외 기업 유치에 상당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12월 SM그룹 계열사인 대구 달성군 ㈜남선알미늄을 방문한 대구시 현장민원팀은 SM그룹이 워크아웃 절차가 진행 중인 동국무역(현 TK케미칼)을 인수한다는 ‘고급정보’를 얻었다.
담당 공무원은 이를 김범일 시장에게 즉각 보고했다.
김 시장은 1월 SM그룹 우오현(55) 회장을 대구로 초청해 “동국무역을 인수하면 본사를 대구로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본사 이전과 관련해 최대한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약속도 덧붙였다.
우 회장은 고심 끝에 이 제의를 받아들였고 시는 SM그룹이 동국무역 인수 잔금 등 300억 원을 지역 은행을 통해 조달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 회장은 6월 TK케미칼의 본사를 서울에서 대구로 옮기고 2011년까지 대구 동구 신도시 예정지구에 SM그룹 연구개발센터와 TK케미칼 본사를 짓는 등 18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하겠다고 대구시에 화답했다.
시는 이 회사의 이전으로 지역경제의 연간 매출액이 7300억 원가량 늘고 200여 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구시 간부 공무원이 세계적인 의류업체인 영원무역 본사를 수십 차례 찾아가 임원들을 설득한 끝에 이 회사 물류센터를 대구로 이전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2006년 7월부터 최근까지 대구시가 유치한 기업은 국내 15곳, 외국인 투자기업 10곳 등 25곳. 이 같은 성과는 KTX와 대구국제공항, 인력배출 시스템 등 지역의 우수한 인프라를 적극 홍보하며 발로 뛰는 대구시의 ‘현장 행정’ 덕분이다.
대구시 김상훈 경제통상국장은 “발로 뛰는 행정이 기업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며 “굵직굵직한 대기업 본사나 계열사를 유치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정성 다하니 기업인들 마음 열어”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퇴출 대상 공무원들을 현장으로 보내는 바람에 산업단지를 돌아다니는 게 부끄러울 때도 있었죠. 하지만 이젠 제가 하는 일에 자부심과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대구시 경제통상국 기업현장민원 담당 장주연(42·여·6급) 씨.
현장민원 부서에 근무한 지 6개월에 불과하지만 지역 기업인들의 크고 작은 문제를 자상하게 처리해 주는 ‘여성 민원 특공대’다.
그는 “회사 관계자와 상담할 때 여성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다”며 “기업인들이 처음에는 공무원과 만나는 것을 꺼렸는데 내가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열어 회사 내부 사정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시내 공단을 돌며 하루 평균 업체 2곳을 찾는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도 하루 평균 50∼250km. 상담은 통상 1시간가량 진행된다.
그는 “최근 경기 침체의 여파로 내가 방문했던 업체의 문이 오랫동안 닫혀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 아플 때도 있지만 공단을 돌다 한 업체 사장이 현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검게 그을린 얼굴로 땀 흘리는 모습을 보고 감동 받은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