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시대 저물어 간다” 관측 지배적
북한의 권력 2인자이자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석하지 않은 가운데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정권 수립 60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에서 5대 권력기관 명의로 김 위원장에게 바치는 축하문 형식의 ‘충성서약’을 발표했다.
북한 노동당중앙위원회,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국방위원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내각 명의의 축하문 형식은 2002년과 2007년 김 위원장의 60회 및 65회 생일에 사용된 적이 있다. 하지만 정권 수립 기념일에는 처음 등장했다.
권력기관들이 이처럼 표면적으로는 충성을 맹세하고 있지만 최고지도자가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은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파란만장한 김 위원장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5대 기관 합동 축하문과 인민들의 입소문=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낭독한 축하문은 9·9절 당일 김정일 위원장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노농적위대의 열병식이 시작하기 전인 오후 4시경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전문이 공개됐다.
축하문은 북한 정권 60년을 회고하면서 고(故) 김일성 주석의 업적도 얘기했지만 두 배가량의 분량을 김 위원장을 찬양하는 데 할애했다.
축하문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께 운명을 전적으로 의탁하고 장군님의 사상과 영도를 한마음 한뜻으로 받들어 공화국의 무궁한 번영을 이룩해 나가려는 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절대불변의 신념이며 의지”라고 ‘충성’을 맹세했다.
그러나 인민들 사이에서는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에 관한 다양한 소문들이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쓰러졌다가 일어난 뒤 말을 할 수 없는 ‘벙어리’가 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전했다.
김성호 국가정보원장이 1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김 위원장이 언어에는 전혀 장애가 없다”고 보고한 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진위를 확인할 수 없지만 북한 주민들의 흉흉한 민심을 나타내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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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 가는 김정일 시대=김 위원장은 1974년 2월 13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으로 선출되면서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공식 지목됐다. 이후 아버지의 신격화 및 아버지에게 바칠 충성 자금을 마련하는 역할을 하면서 ‘측근정치’와 ‘수령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정교한 1인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전문가들은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김 위원장이 실질적인 권력을 물려받았다고 보지만 그가 공식적인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된 것은 1994년 7월 김 주석이 사망한 이후다. 김 위원장은 3년 동안 ‘유훈(遺訓)’ 통치의 뒤에 숨어 ‘고난의 행군’으로 불리는 사상 초유의 경제 위기의 책임을 피했다.
1997년 10월 노동당 총비서가 되면서 공식적인 국가 최고지도자가 된 그는 1998년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되면서 헌법을 개정하고 내각책임제를 강화했다. 2002년에는 과감한 경제 개혁 개방 조치를 단행하는 등 국정 쇄신을 위해 힘썼다.
그러나 2006년을 고비로 각종 개혁 정책들이 힘을 잃고 경제성장률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선 가운데 올해 들어선 남북 관계와 대미 관계가 모두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뇌출혈로 병상에 눕는 신세가 됐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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