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내내 재개발과 재건축 등 건설경기 활성화를 강조했던 이 대통령이 후반부 국가비전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IT기술 발전은 고용 창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시사평론가 유창선 씨의 "녹색성장이란 표현이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냐"는 질문에, 이 대통령은 "정보화 시대에는 정보화를 접하는 사람은 소득이 높아진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소득이 낮아진 폐해가 있었다"면서 "IT기술은 일자리를 자꾸 줄였다"고 결론 내렸다. 대신 "녹색성장'을 추구하면 소득분배 효과가 높아지고 일자리는 세 배가 늘 수 있다"고 강조한 것이다.
이 같은 발언 이후 인터넷의 IT커뮤니티들에선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상당수의 누리꾼들은 "대통령의 발언이 구시대적인 발상"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크게 3가지 관점으로 정리된다.
첫째, IT산업 대세론이다. 우선 누리꾼들은 한국경제에서 IT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훌쩍 넘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인터넷 시장은 전 세계를 이으며 새로운 경제권을 창출하고 있다. 국내 온라인 경제 시장은 올해 30조원 규모에 이른다. 이 온라인 시장을 근간으로 경제활동을 벌이는 젊은이들 역시 우리의 예상치를 훨씬 넘는 수준이라는 얘기다.
둘째는 이 대통령의 '구시대적 산업관'이다. 이 대통령은 60~80년대 중동과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주로 건설업을 통해 한국사회에 기여해왔다. 취임하면서도 '대운하'나 '재건축'을 제외하고 IT산업에 대해서는 특별한 철학을 보여주지 못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한국 IT산업의 총괄부서인 정보통신부를 해체하는 등 IT산업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듯한 행보를 보여 왔다.
마지막으로 현재 진행 중인 IT산업의 융복합화 추세다. IT산업은 점차 연관 산업의 효율성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매김 하고 있기 때문에, IT산업을 다른 산업과 구분하여 고용이나 통계치를 산출한다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지적이다.
한 글로벌 벤처기업인은 "이 대통령은 저부가가치 고용이라도 단순 숫자만 늘어나면 그게 더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IT산업을 기반으로 한 지식기반 산업이 한국을 선진국 대열에 합류시킨 점을 간과한 것 같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 일부 경제학자들 "IT, 고용 없는 성장 불렀다"
그러나 녹색성장론을 지지하는 일부 전문가들의 생각은 누리꾼이나 IT전문가들의 정서와는 다르다. 실제 IT기술의 발전이 고용의 양적인 저하를 가져왔다는 이론이다.
"지식기반 사회가 양극화를 심화시켰다는 데는 경제학자들 내에서도 이견(異見)이 없어요. 기술을 가진 젊은 세대가 부(富)를 창출하지만 그 밖의 사람들은 계속 해고되고 있잖아요. 특히 IT를 중심으로 한 성장은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폐해를 가져왔습니다."(과학기술정책연구원 조현대 박사)
정부의 자문위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A교수 역시 "IT기술 발전이 단위생산에 들어가는 노동의 양, 특히 저숙련 노동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다"면서 "대통령의 발언은 검증된 이론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옹호하고 나섰다.
실제 이와 관련된 논문이 적지 않게 나와 있다. 기술 경제학자들은 "정보통신 분야의 급속한 기술 발전 및 확산은 생산 활동이 필요로 하는 노동수요를 급속히 감소시켜 고용의 창출로 연계되지 못했다"는 지적을 해왔다. 그러나 여전히 그 실상과 원인에 대한 분석은 아직도 미비한 실정이다.
과연 IT기술의 발전과 지식경제가 한국의 일자리를 줄이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 대안은 과연 녹색성장인 걸까.
● 녹색 성장이 고용을 세 배로?
"녹색성장이란 훨씬 더 적은 공해물질을 발생시키는 기술,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기술, 환경을 덜 파괴하는 기술이기 때문에 한 마디로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을 중심으로 성장해 나간다는 뜻입니다."(건국대학교 박재민 교수)
한 마디로 녹색성장이란 차세대 기술 산업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정부의 경제정책에 관여하고 있는 한 핵심 교수는 "IT산업을 빼고 녹색성장과 지식기반 산업을 말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당연히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누리꾼들 역시 "고부가가치 산업을 하자면서 IT기술을 천시하고 토론회 내내 건설업 관련 발언만 한 이 대통령의 경제철학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하기도 했다.
너무 민감하게 해석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자는 의견도 있다.
조현대 박사는 "이 대통령이 취임 전에는 '747'이라는 수출을 중심으로 한 단순성장 정책을 펼쳤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며 "지금은 고용증대와 효율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 정책을 세우고 있는 과도기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