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스 22일 부임… 주한 美대사는 어떤 자리?

  • 입력 2008년 9월 20일 02시 59분


독재정권땐 ‘정치적 파워맨’

최근엔 한미동맹의 ‘메신저’

《최초의 여성 주한 미국대사이며 지한파 인사인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가 22일 부임한다. 한미 관계가 10년간의 삐걱거리던 시절을 지나 ‘21세기 전략동맹’으로 발돋움하려는 시기에 부임하는 스티븐스 대사에게 쏠리는 안팎의 관심은 남다르다. 제임스 릴리(1986∼1989년 재임) 도널드 그레그(1989∼1993년 재임) 토머스 허버드(2001∼2004년 재임) 전 주한 미국대사, 그리고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에게서 주한 미국대사가 어떤 자리인지, 그리고 스티븐스 대사에 대한 충고와 격려를 들어봤다.》

美정부 한반도 정책에 결정적 영향

“무소불위 권한 행사한다는건 오해”

역대 대사 거의 외교관… ‘정치인 낙하산’ 없어

▽얼마나 힘이 센 자리인가=“주한 미국대사는 워싱턴의 세밀한 통제를 받는다. 일각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독립적이고 강력한(powerful) 자리는 아니다.”

미 국무부 한국과장을 지낸 데이비드 스트로브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부소장은 “긍정적 의미든, 비판적 의미든 주한 미국대사의 권한과 역할을 과장해서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한미 관계에 있어 대사의 역할은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한국을 미국의 신식민지로 규정한 민족해방(NL)파가 운동권에서 득세하던 시절, 일각에선 주한 미국대사를 일제강점기의 총독에 비유하곤 했다.

이에 대해 그레그 전 대사는 “재임 중 북한이 항상 주장하던 게 대사를 일본 총독에 비유하는 것이었지만 그런 비유는 불공정하고 비논리적인 과장”이라며 “주한 대사는 결코 무소불위의 자리가 아니고 매우 많은 도전을 다뤄야 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허버드 전 대사도 “한국은 매우 역동적인(active) 민주주의 국가이고 대사는 대화 파트너에 불과하다”며 “한국 사회의 의사결정 구조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외교통상부의 한 고위 관리는 “독재치하 때 주한 대사가 한국 정국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상당했지만 이제 그런 역할은 없어졌다”며 “이젠 한미동맹의 큰 그림을 그리면서 쌍방통행을 얼마나 잘하는지, 즉 한국의 상황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워싱턴에 전달하고 한국인들과 얼마나 원활히 소통하는지가 주한 대사에 대한 평가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주한 대사였던 릴리 씨는 전두환 정권의 군 동원을 막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의 상황이 대규모 유혈사태 없이 해결된 것은) 미국 덕분이 결코 아니었다. 한국인들, 노태우 전두환 등이 결정했다. 대사가 기여한 게 있다면 무력 사용을 하지 않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을 뿐이다. 우리는 당시 한국인 스스로 그 방향(평화적 해결)으로 결정을 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특히 한국인 4성 장군이 무력사용을 반대했다. 그 장군은 다시는 광주 때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말했다.”

▽워싱턴과 서울의 소통자=국무부 전직 간부는 “한반도 정책에 관한 한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더 중요한 자리”라면서도 “다만 대사가 한국 상황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설명하는지가 대통령과 국무장관의 의사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미 행정부 내에 유럽 러시아 일본 중국 전문가는 많지만 한국 전문가는 상대적으로 적다. 따라서 서울에서 어떻게 판단해 보고하느냐가 큰 영향을 미친다”고 덧붙였다.

스트로브 부소장도 “주한 대사는 기본적으로 백악관과 국무부 아시아태평양국과 거의 매일 접촉한다. 대사의 보고는 워싱턴이 한국 상황을 파악하는 주요한 소스 가운데 하나다”라고 말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대사의 능력은 상당 부분 국무장관, 대통령과의 관계에 달려 있다”며 “세 사람이 정책 방향에 완전히 동의하면 일이 매우 잘 움직이지만 만약 국무장관이나 대통령이 대사가 불편하게 느끼는 일을 하도록 요구한다면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대사 중에서도 독특한 자리=미국에서도 정권이 바뀌면 외교 경험이 전혀 없는 선거캠프 출신이 논공행상으로 대사가 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하지만 주한 대사만큼은 그런 사례가 거의 없었다. 직업 외교관이거나 한반도 문제를 오래 다뤄온 정보계통 관리, 동아시아 전공 학자 등이 대부분이었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허버드 전 대사는 “주한 대사는 서울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동시에 북한 문제를 협의하고 함께 처리해야 한다. 주한미군 사령관과의 협조가 요구된다는 점도 독특하다”고 말했다.

그레그 전 대사도 “주한 대사는 우선 한국 정부를 상대해야 하고, 둘째로 독립적인 4성장군인 주한미군 사령관을 상대하며, 셋째로 한국이 여전히 분단된 국가라는 사실을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주한미군 사령관과 대사의 관계에 대해 그레그 전 대사는 “내가 대사로 부임했을 때 사령관에게 ‘당신은 한반도에서 내가 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인물이다. 하지만 분명히 내가 넘버원이고 당신은 넘버투다’라고 주지시켰다”고 회상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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