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까지는 정기국회 회기와 겹친다. 대통령은 국민이 기대하는 국정을 펴는 데 필요한 입법 기반을 1년차에 최대한 확보해야 할 것이다. 법은 정책의 통로다. 민생 관련 법안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다. 그렇다고 졸속으로 양산만 해선 안 되고, 법률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여야가 정치적 정략적으로 충돌하며 법을 누더기로 만드는 일이 없도록 정부가 공을 많이 들일 수밖에 없다. 야당을 움직이려면 다수 국민의 응원부터 이끌어 내야 한다. 설득의 능력과 노력이 절실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문제는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갖가지 관측과 우려를 낳고 있다. 북의 정세 변화는 민족의 장래가 걸린 문제이고 중차대한 안보문제이자 또한 경제문제이다. 그렇지 않아도 나라 안팎의 경제 악재가 얽혀 있는데,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우리 경제의 시계(視界)를 더 흐려 놓았다. 지난 봄여름의 촛불 상황은 ‘괴담 위기’였지만 북한 급변과 금융대란 가능성은 ‘진성(眞性) 위기’의 화약고나 다름없다. 이들 문제는 대통령 임기 2년차의 국정 기상도(氣象圖)를 좌우해 버릴지도 모른다.
정부 ‘드림팀 構想’ 해봄직
2년차는 5년 단임 대통령의 성패를 갈라놓을 수 있는 기간이다. 그런 만큼 대통령은 당장의 현안들 못지않게 100일 뒤에 시작될 2년차를 구상하고 준비하는 데 힘써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을 둘러싼 관료조직은 두텁다. 아무리 이른 새벽에 신문을 직접 읽고, 밤 9시 TV 뉴스를 꾸준히 보더라도 조직적 보고(報告)에 익숙해지다 보면 대통령 자신과 정부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통찰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어제 중앙일보가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9월 18일 현재 대통령 국정에 대한 지지율은 25.4%에 그쳤다. 6, 7월보다는 소폭 상승했지만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기엔 부족한 수준이다. 좀 더 확실한 전기(轉機)를 마련하면서 2년차를 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촛불시위 때처럼 수동적이 아니라 대통령이 주도하는 터닝 포인트가 중요하다.
역대 여러 대통령이 인사(人事)에서 후한 점수를 못 받았지만 이 대통령은 인사 때문에 지지도를 특히 많이 잃은 경우에 속한다.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더라도 임기 2년차의 성공을 충실히 뒷받침해 줄 정부 ‘드림팀’에 대한 구상은 해봄 직하다.
사람을 자주 바꾸는 게 능사는 아니며, 정말 훌륭한 대안 인물들이 있는지도 문제다. 대통령이 경제난국 타개, 북한의 급변사태 대응을 비롯한 외교안보, 국내 각 분야의 대한민국 정체성 회복을 지금의 진용에 맡겨도 충분하다고 확신한다면 바깥의 어떤 의견도 무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취임 무렵 “6개월마다 실적을 평가하겠다”고 밝힌 대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를 해본다면 인사가 불가피한 분야들이 있을 법하다.
세계의 경제금융계가 대통령에게 한국의 책임자는 누구냐(Who is in charge?)라고 물었을 때 “바로 이 사람(The man in charge)”이라고 지칭할 만한 인물이 경제팀을 이끌어야 국내외 시장의 신뢰를 복구할 수 있다. 장관이나 청와대수석 이상뿐 아니라 그 밑에도 국민을 위해 ‘정말 탁월하게 제 몫을 해야 할 요직’이 적지 않다. 이런 자리들을 출중한 인재들로 최대한 채운다면 국정의 모습이 빠른 기간 내에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정부조직을 보강 쇄신하는 인사에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면 그 자체가 대통령의 신뢰회복에 직결될 것이 틀림없다.
국민도 人事비판 잣대 수정할 때
이제 정부 인사에 대한 국민의 인식도 바뀔 때가 됐다. 야당은 물론이고 심지어 지지층 국민조차도 대통령의 인사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재미를 보려 한다. 낡았다, 때 묻었다, 고소영이다, 강부자다 등등 꼬집을 말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국민도 인사에 대한 이중성(二重性)을 버릴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기용하는 사람은 결국 국민이 부리는 사람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들의 자질과 능력과 집념에 따라 국민이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파이’가 현저하게 달라진다. 국민은 ‘진짜 일할 사람, 믿고 맡길 사람을 발탁하라’라고 대통령에게 주문해야 한다. 그리고 대통령은 가까운 데서 갑자기 사람을 고르려고 하지 말고, 정부 밖의 의견도 폭넓게 듣고 인재다운 인재를 찾아내야 할 것이다. 할 일이 태산 같은 정부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