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중구난방 한나라당, 정권교체 所任 잊었나

  • 입력 2008년 9월 25일 02시 45분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그제 소속 의원들에게 종합부동산세에 관해 집권여당다운 토론을 주문하면서 “우리가 아무것도 못하는 정당이니 불임(不妊)정당이니 하는 수치스러운 비난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의원총회 토론과정을 보면 한나라당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지나친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종부세제 개혁은 이명박 정권의 대선공약이다. 종부세는 이중과세 금지원칙에 어긋나는 ‘징벌적 세금’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일관된 논리였다. 범죄를 저질러도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에 따라 두 번 처벌하지 않는데 비싼 아파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재산세에 종부세까지 매기는 것은 조세정의(正義)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정작 정부가 종부세제 개혁안을 내놓자 서울 강남 지역구 의원과 비(非)강남 의원으로 나뉘어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심지어 “1% 정당 되는 게 그렇게 좋으냐”라며, 좌파 정치세력이 자주 하는 ‘편 가르기’ 선동을 흉내 낸 의원도 있다. 종부세의 불합리를 어떻게 해소할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인기관리에 급급한 인상을 준다.

대통령과 함께 국정의 무한책임을 져야 할 여당의 정책토론은 야당과 달라야 한다. 이 정부는 출범 직후 ‘당정협의업무 운영규정’을 고쳐 분기별 1회로 돼 있던 고위당정협의회를 매월 1회로 늘렸다. 당정간 갈등으로 국정을 표류시킨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제도만 바뀌었을 뿐 한나라당 지도부와 의원들의 체질과 의식은 ‘10년 야당’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와 엇나가는 것이 신선한 정치인 양 여기는 풍조마저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 총선이 끝난 지 5개월이다. 청와대는 집권 2년차의 입법기반을 다지고 경제 살리기, 민생 개선, 미래 선도, 선진화를 위해 시급하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45개 법안은 꼭 처리해 달라”고 한나라당에 요망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석이 과반수지만 지금처럼 지리멸렬해서는 입법 활동의 생산성을 높이기 어려워 보인다. 구심점도 없이 허구한 날 좌충우돌하는 모습으로는 싸움에 능한 야당에 끌려 다니느라 바쁠 것이다. 지도부와 의원들은 국민이 왜 좌파정권을 10년 만에 종식시키고 한나라당 정권을 만들어주었는지 인식부터 새롭게 하고, 당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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