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핵시설 재가동한 북한 ‘핵 폐기 합의’는 위장이었나

  • 입력 2008년 9월 25일 02시 45분


북한 핵 폐기 협상이 좌초 위기에 빠졌다. 북한은 어제 영변에 머물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관의 핵시설 접근을 차단하고 1주일 내에 핵 재처리시설에 핵물질을 주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핵시설에 부착돼 있던 봉인과 감시카메라도 제거했다.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2002년으로 시계추를 되돌리는 중대한 도발이다. 북한은 당시에도 핵시설의 봉인을 뜯어내고 이틀 뒤 감시요원을 추방했다. 북한의 도발이 결국 2006년 핵실험으로 이어진 사실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한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 검증을 둘러싸고 미국과 갈등이 빚어지자 8월 14일 핵 불능화 중단 선언을 한 뒤 핵시설 복구 방침 발표(26일), 복구 준비작업 시작(9월 3일), 봉인 제거 요청(22일)으로 위기를 고조시켰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에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분석하지만 사태의 추이를 볼 때 그렇게 단순한 것 같지 않다. 북이 재처리시설에 주입하겠다고 한 핵물질은 사용 후 핵연료봉인 것으로 보인다. 다시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 생산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이 실제로는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으면서 6자회담에 나와 핵을 포기할 것처럼 위장했다가 본색을 드러낸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그렇지 않다면 2003년 시작돼 9·19선언과 2·13합의를 이끌어낸 6자회담 참가국을 깔아뭉개는 도발을 쉽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북의 플루토늄 생산 재개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오랫동안 매달려 어렵게 이룩한 합의가 수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북이 불능화 중단 선언을 한 8월 14일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제기됐지만 핵 폐기 역주행(逆走行) 같은 중대한 결정을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 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북한을 제외한 6자회담 참가국은 사태를 엄중하게 보고 핵 포기 여부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요구해야 한다. 6자회담에서 북핵 불용(不容)은 양보할 수 없는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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