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시설 복구 시작 한달만에… 北 ‘위기고조 전술’ 속도전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9월 25일 02시 54분



6자회담 판깨기 보다는 “美가 양보를” 압박 카드인 듯

“김정일 건강에서 핵으로 이슈전환 군부의 전략” 분석도

힐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협상 진전시킬 방안 모색”

■ 북핵협상 중대고비


북한이 핵시설 복구를 공식화한 데 이어 24일 곧 재처리시설의 재가동에 들어갈 것이라고 선언함에 따라 북핵 협상이 중대 고비를 맞고 있다.

▽북한의 ‘벼랑 끝’ 수순=북한은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유보 조치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8월 14일 핵불능화 작업을 중단한 뒤 북핵 위기지수를 단계적으로 높여 왔다.

문제는 북한이 예상보다 빠르게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그간 재처리시설을 완전히 복구하는 데는 최소한 2, 3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북한이 다음 주 핵물질을 투입해 재처리시설을 재가동할 경우 핵불능화 복구 작업을 시작한 지(9월 3일) 불과 한 달도 안 돼 핵무기의 재료인 플루토늄 생산에 돌입하게 되는 셈이다.

재처리시설은 ‘사용 후 연료봉(폐연료봉)’을 활용해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가장 민감한 시설로 복구기간이 짧다. 특히 북한은 재처리시설의 핵심 장비를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8월 14일까지 전체 8000개의 ‘사용 후 연료봉’ 가운데 4800개가량을 꺼내 수조에 보관하는 불능화 조치를 해 왔다. 재처리시설을 복구하면 현재 수조 안에 보관 중인 4800개가량의 ‘사용 후 원자로’과 원자로에 내장돼 있는 3200여 개의 연료봉을 재처리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무기급 플루토늄 6∼8kg을 생산할 수 있다.


▽김정일 건강이상과의 함수=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의 움직임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과도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이 마지막 공개 활동을 한 8월 14일 핵불능화 중단을 선언했다. 특히 핵시설 원상복구 방침을 밝힌 북한 외무성의 성명(8월 26일)은 눈여겨볼 대목이 많다. “우리 ‘해당 기관’들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원상복구 조치를 고려하게 될 것”이란 부분은 그동안 핵협상을 이끌어온 북한 외무성 대신 군부 강경파가 득세를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성명은 ‘6자구도가 과연 필요하겠느냐’ ‘미국의 자주권 침해’ ‘미국에 고분거리지 않는 나라’ ‘(테러지원국) 명단에 그냥 남아 있어도 무방’ 등 강경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이후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설 속에 북한은 단계적으로 핵시설 복구 조치의 수위를 높여 왔다.

김 위원장이 여전히 병상에서 핵문제를 직접 챙기고 있는 것인지, 김 위원장 주변을 둘러싼 군부 출신 측근들이 강경책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한 외교 소식통은 “핵위기 고조는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에서 북핵 문제로 이슈를 전환하는 데도, 체제결속을 하는 데도 유용한 다목적 카드”라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핵실험 2주년인 10월 9일 추가 핵실험을 준비할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북한의 다음 카드는=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6자회담이라는 판 자체를 깨려고 한다는 시각은 아직은 많지 않다. 한 당국자는 “북한이 전형적인 ‘살라미(얇게 썰어먹는 이탈리아 소시지)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며 “핵시설 복구조치를 최대한 잘게 쪼개 미국에 근본적인 양보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기존 핵검증 이행방안에 대한 북한의 거부 반응을 고려해 완화된 수정안을 제시하고, 중국이 북한에 수용할 것을 권고한다면 절충의 가능성은 있다. 6자회담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21일 뉴욕에서 이뤄진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협의 후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협상을 진전시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이날 조치는 북한이 뉴욕 유엔총회를 계기로 열리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양제츠(楊潔지) 중국 외교부장의 양자회담을 앞두고 ‘승부수’를 던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라이스-양제츠 양자회담에서도 절충점을 찾지 못하고 한국과 미국 등이 북한에 대한 경제, 에너지 지원을 중단할 경우엔 협상은 결렬될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 대선(11월 4일)이 임박해 있어 북한은 물러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와의 협상을 서두를 필요를 덜 느낄 수도 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의 새 행정부가 출범해 외교라인이 정비되는 내년 상반기 이후까지 약 1년간 북핵 협상이 공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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