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옌볜(延邊)에 살고 있는 박은화(가명·13) 양은 ‘탈북 고아’다. 함북 나진에서 태어난 박 양은 2005년 겨울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나 어머니는 고향을 등진 지 두 달 만에 옌볜에 도착해 그 다음 날 박 양을 교회에 홀로 남겨놓고 사라져 버렸다. 김인호(가명·10) 군은 중국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무국적 아동’이다. 어머니는 탈북 후 조선족 아버지와 결혼해 김 군을 낳은 뒤 5년 전 북한 요원들에게 붙잡혀 북송됐다. 탈북자라는 신분을 숨겨야만 했던 어머니는 아들의 출생신고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도 현재 실종된 상태다.》
“날 버린 부모 밉지만 어디 있든 건강하길…
북조선인 체포 소문 들으면 밥도 못먹어”
전문가들 “최대 1만7000명 교육 - 의료 사각지대서 구해야”
1990년대 중반 이후 진행된 북한 주민들의 대량 탈북 사태가 빚어낸 현상이다. 어린 나이에 외지인들 속에서 힘들게 생존해야 하는 이들은 사회적 보호와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본보는 ‘2008 북한 인권 국민 캠페인’ 사무국이 중국 내 탈북 고아 및 무국적 아동 6명을 직접 인터뷰한 동영상을 25일 입수했다. 또 국내에 입국한 탈북 고아 2명을 전화로 인터뷰해 생생한 실상을 들어봤다.
▽두려움에 떠는 탈북 고아=북한 인권 운동가들에 따르면 중국 등지의 탈북 고아는 현재 2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동영상 인터뷰에서 박 양 등 버림받은 고아들은 부모에 대한 원망을 감추지 못했다.
박 양은 “누가 제일 밉지”라는 질문에 서슴지 않고 “엄마”라고 대답한 뒤 울음을 터뜨렸다.
김희수(가명·13·옌볜 거주) 양도 “엄마에게 할 이야기가 있느냐”는 물음에 한동안 울먹이다 20여 분이 지나서야 “어디 있든 몸 건강하세요”라고 말했다.
탈북 고아들은 대부분 좋은 음식이나 옷 등에 큰 욕심이 없다고 했다. 욕심을 내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중국어 공부’가 제일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북송되지 않으려면 중국말을 잘해 중국인처럼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리나(가명·14·옌볜 거주) 양은 “중국 친구들에게 내 이름과 탈북자라는 사실을 속이고 사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김 양은 “올해 베이징 올림픽이 진행되는 동안 (중국 공안이) 북조선 사람들을 다 잡아간다고 해 무서웠다”고 털어놨다.
중국 생활 3년째인 최은혜(가명·18) 양도 “누가 잡혀갔다는 소문을 들으면 속이 떨려 밥도 먹지 못하고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 말했다. ▽방치된 무국적 아동=중국 등 해외에서 살고 있는 무국적 아동은 1만∼1만5000여 명으로 추산된다. 탈북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은 신변안전과 생계문제 때문에 중국인(조선족 포함)과 살다가 아이를 낳지만 출생신고를 하지 않는 사례가 태반이다.
더욱이 탈북 여성인 어머니가 북송되면 가정은 해체되고 중국인 아버지의 경제 능력도 취약한 경우가 많아 상당수 아이들이 고아처럼 방치되고 있는 것.
김인호 군은 그나마 다행히 양부모를 만나 기본적인 생계유지는 하고 있지만 자신의 불행한 처지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은 듯 “엄마는 왜 하필 북조선 사람이었고, 왜 결혼했는지 원망스럽다”고 했다.
▽국제 아동 인권보호 차원서 다뤄야=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은 “탈북 고아와 무국적 아동은 대부분 경제사정이 어렵고 합법적인 신분 획득이 힘들어 공교육에서 배제되고 있고 의료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8 북한 인권 국민 캠페인’의 공동 대회장을 맡은 김석우(전 통일원 차관) 북한인권시민연합 고문은 “중국과 북한은 유엔의 아동 권리에 관한 협약에 가입한 국가이므로 탈북 고아와 무국적 아동의 인권 향상에 협조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캠페인은 국내외 북한 인권 운동가 100여 명이 참여해 2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등지에서 개최되고 있다. 25일에는 북한 내 정치범 수용소와 정보 유통의 문제, 김정일 이후 북한 등의 주제를 놓고 국제회의가 열렸다.
탈북 고아와 무국적 아동에 대한 후원 계좌는 국민은행 343601-04-058440(한기홍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대표).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