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부족 탓… 9개국 통화스와프때 지원 검토조차 안해
외국인 투자도 감소세… “FTA체결로 운명 공동체 늘려야”
지난달 29일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법안이 하원에서 부결되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통화스와프(달러를 해당국 화폐와 교환) 방식으로 유럽중앙은행(ECB), 영국, 일본, 호주, 캐나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중앙은행 등 9개국 중앙은행에 대한 달러 지원 한도를 즉각 늘렸다. 세계적인 금융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미국이 한국에 대해서도 달러화 지원에 나섰더라면 국내 금융시장의 심리적인 불안감은 크게 해소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한국은행과 정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국은 FRB의 검토 대상에도 들지 못했다. 원화가 국제결제통화가 아니어서 달러를 빌려줄 때 담보가치가 떨어지는 데다 국제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일찌감치 발효돼 양국 경제가 ‘운명공동체적 성격’을 가진 상태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 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글로벌 개방과 경제동맹 구축을 한층 더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는 대외 여건에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소규모 개방경제 체제의 숙명이기도 하다.
정부가 한중일 3국 간에 800억 달러의 공동기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앞당겨 성사시키자고 나서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
○ 여전히 팽배한 구한말 쇄국주의
현실에서는 한국이 경제의 70%를 대외교역에 의존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의 일도 자주 벌어진다.
당장 한미 FTA 비준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되면서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또 한 차례 거리를 점거할 태세다. 정치권은 눈치 보기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경제의 신(新)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의료 교육 등 서비스업 개방도 이익단체의 반발에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전투적인 노조운동, 반(反)기업정서, 외국인 근로자 차별 등 국민의 개방 마인드도 크게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한국에 투자하겠다는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외국인직접투자액(신고액 기준)은 지난해 4분기(10∼12월) 41억9500만 달러에서 쇠고기 파동이 한창이던 올해 2분기(4∼6월) 18억3200만 달러로 급감했다.
컨설팅기업인 AT커니가 세계 1000대 기업을 설문해 공개하는 47개국 대상 FDI 매력도 조사에서도 한국은 2003년 18위에서 지난해 24위로 해마다 추락하고 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줄지어 한국을 떠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3년 34억3000만 달러였던 국내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액은 올해 들어 8월까지만 96억9000만 달러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직접투자수지도 지난해 137억 달러의 적자에 이어 올해 1∼8월 96억7000만 달러의 적자를 보이고 있다.
○ 개방과 경제동맹이 위기 대처법
부존자원이 없고 서비스업 등 신성장동력을 미처 확보하지 못한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길러 달러를 확보하는 게 필수불가결하다. 그러나 문을 걸어 잠그고 대외경쟁력을 기를 수 없다. 경쟁력은 경쟁 상황에서만 길러지기 때문이다.
또한 주요국과의 ‘경제동맹’을 확대하기 위해서도 FTA를 체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이는 가장 확실한 위기 대응법이기도 하다. 도하개발어젠다(DDA) 등 다자간 경제협력 체제는 이미 실현 가능성의 한계를 드러낸 바 있다.
정인교(경제학) 인하대 교수는 “경제동맹은 시장 확대 효과뿐 아니라 두 나라를 운명공동체로 묶는 효과가 있다”며 “특히 냉전체제가 붕괴된 이후 FTA 등 경제동맹이 군사동맹을 대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세계경제의 주요 플레이어로 참여하고 외국인 투자 유치를 늘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사회적 인프라 정비도 시급하다. 특히 법과 원칙의 확립, 규제 투명성, 국민의 개방 마인드 제고 등의 난제(難題)는 정치권과 정부의 리더십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대외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를 확실히 세워 대외경제 관련 정책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이시욱 박사는 “통상 관련 정책 기관이 외교통상부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로 나뉘어 있어 정책 집행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무역과 통상 관련 정책 및 분쟁 조정, 협상을 총괄 조정할 수 있는 정책 기구를 구상하는 등 대외경제 정책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