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6일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남북 관계의 단절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북-미 관계의 진전이라는 외교적 성과를 활용해 남한을 압박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3월 말 이후 남북 당국 간 관계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여서 북한의 이날 언급은 남북 경협 및 민간 교류 관계까지 중단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 북한의 후속 조치가 주목된다.
▽대외정책 방향 천명해 대내 결속 노린 듯=이번 조치는 미국이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 직후에 나온 것으로 ‘통미봉남(通美封南·미국과 통해서 한국을 봉쇄함)’ 노선을 거듭 천명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북-미 관계가 어려운 시기에는 남북 관계에 힘을 싣고 북-미 관계가 진전될 때는 남북 관계를 조절해 왔다”며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숙원을 이뤘고 미국의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북-미 관계의 개선이 예상되는 시점을 이용해 대남 압박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북한 전역에 퍼지고 그의 축구경기 관람과 군부대 시찰 사실이 북한 언론에 보도된 직후 나온 것으로 볼 때 강력한 대남 비난을 수단으로 삼아 사회 이완을 막고 대내 결속을 다지려는 의도도 분명해 보인다. 대내용 라디오 방송인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이날 노동신문 보도 내용을 주민들에게 신속하게 보도한 것이 이를 증명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차별화를 꾀하는 이명박 정부 아래서는 과거 정부에서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판을 흔들어 협상력을 키우려는 시도란 지적도 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은 노무현 정부와의 거래를 통해 김 위원장과 북한 체제의 위상을 높이고 싼값에 경제 지원을 받았다”며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런 이익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을 의식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을 틈타 군부 내 강경세력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군부는 올해 3월 이후 대남 압박의 전면에 나섰다.
8월 26일 북한 외무성 성명은 군부로 추정되는 ‘관련 기관’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핵 불능화 조치를 중단한다고 했다. 북한 내 온건파가 힘을 잃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목이다.
▽남북 관계 단절 정말 실행할까=전망이 엇갈린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군사 실무회담에서 남측의 ‘삐라’(전단) 살포가 근절되지 않으면 단계적으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만큼 (이번 글은) 조만간 행동에 들어가겠다는 신호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특히 이날 보도 내용 중 ‘우리의 최고 존엄을 감히 건드리는 것’이라는 표현은 그동안 한국 정부와 언론 등이 김 위원장의 건강 문제를 언급하고 한국 민간단체들이 대북 삐라 살포를 통해 김 위원장의 사생활 등을 언급한 것에 대한 유감 표시로 해석된다.
북한은 장차 개성공단 사업과 개성관광의 단계적 또는 전면적 중단 또는 200명 이내로 유지되는 금강산 관광지구 내 한국 측 체류 인원의 전원 철수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과 미사일 발사 등 무력 도발을 통한 한반도 긴장 고조 등도 예상할 수 있다.
반면 한 정보 당국자는 “남북 관계 단절은 북한의 대남 전략 전술에 따른 일방적인 주장일 뿐 현실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