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해 쌀 소득보전 직불금제에 대한 개선책 마련을 지시한 뒤 정부가 제때 조치를 취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감사원이 지난해 3월부터 직불제에 대한 기획감사를 실시하고도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배경과 맞물려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동아일보가 16일 입수한 농림부(현 농림수산식품부)의 ‘쌀 소득보전직불제 제도 개선안’(2007년 8월 작성)이라는 문건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는 2008년 시행을 목표로 직불제 개선안 마련에 나섰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농림부는 같은 달 26일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쌀 소득보전 직불제 제도개선 점검단 및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분야별 문제점을 점검하고 개선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당시 농림부는 △제도설계 △제도운영 △집행관리 등의 관점에서 직불제에 여러 문제점이 있다고 분석한 후 보고했다.
예를 들어 △지급상한이 설정되지 않아 직불금 혜택이 주로 대규모 농가에 편중될 우려가 있고 △일부 실(實)경작하지 않는 사실상의 비농업인이 직불금을 수령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경작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도 부실하다고 평가했다.
농림부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8월 8일 1차 직불제 제도 개선안을 당시 박홍수 장관에게 보고한 뒤 같은 달 24일 감사원 측에도 설명했다.
이와 별개로 농림부는 같은 해 8월부터 9월 사이 문재인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등 청와대 핵심 인사들에게 4차례 제도 개선안을 보고했다. 대통령 지시 사항이지만 정권 말기인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 속도로 개선안을 마련한 셈이다.
농림부는 청와대의 추가 지시 사항을 토대로 9월 10일 농민단체, 지방자치단체, 학계 인사 등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고, 내부 정책심의회 등을 거쳐 같은 해 10월 1일 최종 개선안을 마련했다.
정부는 이를 반영해 ‘쌀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11월 15일 마련한 뒤 △11월 29일 규제개혁위원회 규제심사 의뢰 △12월 7일 국가청렴위원회 부패영향 평가 의뢰 등을 거쳐 12월 4일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정작 입법예고 후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정부는 정권 교체 후인 올해 7월 법제처 심사를 거쳐 10월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대통령 지시 후 관련 법안의 입법예고까지 걸린 시간보다 입법예고 후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직불제 개선안이라는 첨예한 사안을 6개월도 안돼 입법예고까지 마쳤다면 당시 정부의 개선 의지는 비교적 컸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여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의지를 갖고 추진한 사안이라면 왜 임기 내 국회 제출을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개정안 중 시행령 개정사항 등을 둘러싸고 반론이 많았다”며 “법안을 제출하더라도 논의가 진척이 안 되면 17대 국회 종료 후 법안이 자동폐기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18대 정기국회 제출을 목표로 법안을 더 다듬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 영상취재 : 정영준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