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무너지면 금융-실물도 흔들…

  • 입력 2008년 10월 20일 23시 04분


건설사가 공공기관에서 산 땅 뿐 아니라 자체 조성한 땅까지 정부가 매입키로 한 것은 건설업계의 자금사정이 심각할 뿐 아니라 매각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경기가 위축됐음을 보여준다.

토지대금을 전액 부채 상환용으로 쓰도록 한 있는 만큼 건설사의 단기 자금난을 해소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주택경기가 좋을 때 건설사가 무리하게 매집한 토지를 정부가 되사줌으로써 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정부 스스로 방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건설사 자산유동화 지원

지금까지 건설사들은 주택용지를 2가지 방식으로 확보했다. 한국토지공사 등 공공기관이 분양하는 택지를 사거나 도시 내 민간이 보유한 대지를 여러 곳 매입해 공동주택지로 조성한 것이다.

땅을 산 부동산 개발회사들은 이른바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방식으로 금융회사에서 공사대금을 조달했고, 시공사인 중대형 건설사는 개발회사가 상환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지급보증을 섰다.

분양이 잘 될 때는 이런 연결고리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지만 최근 금융회사들이 공사 지연 사업장에 대해 자금 회수에 나서면서 개발회사 뿐 아니라 보증을 선 건설사들까지 어려움을 겪게 됐다.

개발회사와 건설사들은 보유토지를 매각해 상환자금을 마련하려 하지만 토지를 사려는 곳이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토공이 이런 토지들을 매입하면 건설사들이 자금난이 다소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경기가 너무 위축돼 매각 가격을 공시지가보다 약간 높은 수준을 요구했는데도 협상이 결렬되곤 한다"며 "공공 부문이 사주면 대출 상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위기로의 확산 방지

"건설업계의 무분별한 투자에서 비롯된 어려움을 국민의 돈으로 도와줄 필요가 없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를 이번 대책을 내놓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한국경제의 면역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건설사의 대량 부도가 금융기관이나 실물경제로 번져나갈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이번 대책은 '건설사 자금사정 악화→회사채 발행 중단 등으로 자금난 심화→건설사 부도→금융회사 여신 회수→건설사 줄도산→경제 전반에 위기 확산'이라는 연결고리의 시발점에 제동을 걸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정부는 건설사가 보유한 땅을 토공에 넘기면 토공은 대금을 건설사로 송금하는 대신 채권 은행으로 송금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은행에 채무를 진 건설사의 부채를 상환하고 남은 대금만을 건설사 계좌로 보내 토지 매입대금을 다른 용도로 쓰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런 토지매입방안이 시행되면 건설사로선 되도록 높은 값에 땅을 팔려하겠지만 초기 매입대금을 모두 회수하기는 쉽지 않다.

토공은 건설사가 계약금 중도금 잔금을 모두 내 소유권을 완전히 확보한 상황이라면 애초에 매각한 가격대로 사준다. 하지만 잔금이 납부되지 않은 토지는 계약금을 뺀 중도금만 돌려줄 계획이다. 대체로 토공이 매입하는 가격은 시세의 70~80%선 될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당시 토공은 건설사들이 희망매각가격을 써내도록 한 다음 공시지가 대비 희망가 비율이 낮은 토지부터 우선 매수했다. 너무 높은 가격을 써낸 업체는 매각이 힘들도록 한 것이다.

●"도덕적 해이 방조" 지적도

최근 3, 4년 간 건설사들은 공공택지 뿐 아니라 도심 자투리땅을 매입하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주택용지가 부족한 상황에서 입지가 좋은 땅을 선점해두면 나중에 높은 분양가를 받고 집을 지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토지 매매로 시세차익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금융회사도 PF대출이란 명목으로 자금을 운용했지만 사실상 땅을 담보로 대출영업을 하다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게 된 측면이 있다.

이와 관련해 A건설 임원은 "한국에서 사업장의 사업성만을 보고 자금을 융통하는 제대로 된 PF란 사실상 없다"며 "그동안 곪아온 업계 관행이 이번에 실체를 드러낸 셈"이라고 말했다.

토공이 토지 매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토지개발채권을 대거 발행하면 공공 부문의 부채비율이 높아져 결국 국민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수용기자 legman@donga.com

최창봉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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