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7대 국회 1792건 접수… 채택은 12건
1139건 심의도 않고 폐기 ‘유명무실 제도’
“집회·시위의 자유는 평화 집회·시위를 할 자유지 불법·폭력 시위를 할 자유가 아닙니다. 경찰과 시위대 모두를 실질적으로 보호하는 집회·시위법을 바랍니다.”
2007년 2월 전·의경부모모임, 자유주의연대 등 13개 시민단체는 ‘평화적인 집회 및 시위 보호·보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달라고 국회에 입법 청원했다.
당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시위 이후 평화적인 집회 및 시위문화 정착의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높아지고 있었다.
청원 법안은 복면시위 등 폭력시위 요인을 엄단하되 평화 집회는 보장하도록 경찰과 시민단체 추천 인사 등으로 구성된 심의위원회가 도심 집회 여부를 결정하게 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 상임위원회인 국회 행정자치위는 이 청원이 논의해 볼 만한 사안인지 심사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17대 국회 임기가 끝난 올해 5월 29일 이 청원은 자동 폐기됐다.
자유주의연대 대표로 청원에 참여했던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은 “진행 경과를 알 수 없어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식’으로 국회에 계속 문의했다”며 “당시 논의가 이뤄졌다면 올 상반기 촛불집회 때 치른 사회적 비용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 자유로운 의견을 수렴해 국정에 반영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된 국회 청원이 국회의원들의 무관심 속에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18대 국회 들어 접수된 청원은 ‘길거리 금연 법제화’ ‘벽지 지역 학교 선정 기준 재검토’ 등 모두 32건이다. 하지만 임기 시작 후 5개월이 흐르도록 아직 한 건도 논의되지 않았다.
역대 국회에서도 청원 처리 실적은 저조했다. 595건이 접수된 15대 국회에선 397건이 심의도 없이 국회 임기 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16대의 경우 접수된 765건 중 426건, 17대는 접수된 432건 중 316건이 폐기됐다.
청원이 채택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15∼17대 국회에서 채택된 청원은 국회별로 4건씩에 불과했다. 또 어렵게 채택되더라도 국회나 정부가 법이나 정책에 반영하도록 강제할 장치가 없다.
예를 들면 17대 국회에 제출된 ‘핸드볼 전용경기장 건립 청원’은 출석의원 185명 중 183명 찬성으로 채택됐지만 정부로 이송된 뒤 “예산을 확보하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이는 청원이 여야의 전략 법안이나 국회의원 발의 법안이 아니다보니 입법 추진에 힘이 실리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국회의원 임기 4년 동안 해당 상임위의 청원심사소위원회는 보통 2, 3차례 열리는 데 그친다.
한 국회의원은 “청원이 이해관계가 얽혀있거나 재정 뒷받침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심사에 장시간이 소요되는 측면이 있다”면서도 “상임위 일정에 쫓기고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챙기는 것도 바빠 청원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이슈가 생길 때마다 국민들이 직접 거리에 나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등 ‘대의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는 상황에서 ‘국회다운 국회’를 만들기 위해 청원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회 청원:
입법이나 정부 정책 반영을 목적으로 국회의원의 소개를 얻어 국회에 제출하는 일종의 민원 제도. 접수된 청원은 해당 상임위원회로 회부돼 청원심사소위원회의 심사를 거친다. 국회 또는 정부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본회의에 부의해 채택한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