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예산안서 후순위 밀린 SOC사업이 다수
민주 “용납 못해”… 한나라 “당차원 관여안해”
정치권의 ‘예산 갈라먹기’ 관행이 올해도 어김없이 재연되고 있다.
정부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적자국채를 발행하면서까지 내년 예산안을 당초 예상안보다 10조 원가량 더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정작 예산안을 심의하는 정치권에서는 지역구 사업에 국민세금을 끌어들이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 위기 속 예산 갈라먹기=정부가 내년 예산을 증액하기로 한 이유는 과도한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재정을 조기 투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산 증액 방침이 발표되자마자 여당 국회의원 중심으로 지역구 사업부터 반영하려고 해 사업의 적절성을 놓고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수정예산안의 특성에 비춰볼 때 급하게 예산을 짜야 하기 때문에 사업별 타당성 검토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여의도 국회에선 ‘눈먼 돈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실제로 한나라당 전문위원실에 제출된 지역구 SOC 사업들은 기존 예산안에서 후순위로 배정된 것이다.
조원진(대구 달서병) 의원은 △성서공단 내 폐수 이송관로 설치 47억 원 △구마고속도로 확장 139억 원 △대구 테크노폴리스 진입도로 건설 200억 원 △화원∼옥포 국도 확장 140억 원 등 526억 원 증액을 요청했다. 이 중 테크노폴리스 진입도로는 당초 32억 원만 배정됐지만 조 의원은 6배가 넘는 금액으로 늘려달라고 주장했다.
비례대표인 정진석 의원은 자신의 종전 지역구였던 충남 연기군 일대 사업을 위해 739억 원 규모의 예산을 요청했다. 항목별로는 대산∼가곡 국도 확장 포장 사업이 225억 원으로 가장 많고 △배방∼탕정 국도 확장 포장(140억 원) △탕정 테크노콤플렉스 진입도로 개설(118억 원) △아산∼천안 국도 확장 포장(113억 원) 등의 사업도 각각 100억 원이 넘는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당 소속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의원들이 낸 증액분을 합치면 1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 “선심성 예산 용납 안 돼”=한나라당은 당 차원에서는 예결위 의원들의 지역구 사업예산 제출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한구 예결위원장은 “내가 전혀 모르는 사안이었고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굉장히 큰 일”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초 예산안에서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사업을 반영하면 절대 안 된다”며 “의원들이 개인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결위의 한 관계자는 “예결위 직원이 당정회의에서 내놓을 자체 안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사업 리스트를 수집한 것”이라며 “당 전체 문제로 보지 말아 달라”고 주문했다.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너무 노골적이고 심하게 지역구 사업을 챙기려고 한다”며 “정부가 짜온 예산과 대조해 선심성 사업으로 판단되면 용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