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전면적인 단절’ 엄포서 행동으로
美 오바마 정부와 ‘북핵 직거래’ 의도 드러내
북한 군부와 적십자회, 외무성이 12일 이례적으로 동시에 대외 분야에서 강공 드라이브를 걸고 나섬에 따라 향후 북한의 행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남북 당국 간 ‘핫라인’을 끊고 개성공단 등 민간 경협까지 위협하는 초강수를 뒀다. 또 북핵 검증 방식에 있어서도 미국 등 국제사회와 근본적인 견해차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남북관계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심각한 파장이 예상된다.
▽북한 수뇌부의 전략적 판단인 듯=북한의 3개 기관이 일제히 대남, 대미 강경책을 쏟아낸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또는 그의 위임을 받은 지배그룹, 군부 등의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한 지도부는 지난달 16일 노동신문을 통해 당국과 민간을 포함한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단절’ 가능성을 제기했고 이것이 단순히 말뿐인 엄포가 아니라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미국 대선에서 북-미 직접대화를 주장해 온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후보가 당선된 것도 북한의 이런 강경 기조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은 미국 새 정부와의 담판을 모색하면서 한국에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공식 통보함으로써 보수와 진보세력의 균열을 키우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핵 검증을 위한 시료 채취를 거부한 것은 오바마 당선인 측의 관심을 끌고 향후 핵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당국 간 통신 단절=북한이 판문점을 경유한 모든 남북 직통전화 통로를 단절한 것은 군대를 제외한 통상 정부기관 사이의 대면회담 중단에 이어 통신을 통한 접촉마저 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향후 남한 정부와는 어떤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초강수를 둔 것”이라고 말했다.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는 1976년 도끼만행 사건이 벌어졌을 때 북측이 전화를 받지않은 적은 있었지만 1971년 처음 남북 적십자 회담이 이뤄진 이후 37년 동안 사실상 당국 간 핫라인 역할을 해왔다.
북한의 이번 조치로 향후 남북 당국 간 대화 통로는 군 채널로 일원화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들어 남북관계의 전면에 나선 북한 군부가 당국 간 소통의 채널까지 장악하며 대남 강경 방침을 주도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위협받는 개성공단=북한은 또 다음 달부터 개성공단 입주기업이나 관광객 등에 대한 통행과 통신, 통관 등을 까다롭게 해 현대아산과 개성공단 입주기업인 등을 압박하는 전술을 펼 것으로 전망된다.
군부가 이날 전화통지문에 ‘1차적’이라는 단서를 단 것은 앞으로 대응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뜻으로 비친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성공단 내 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 및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에 상주하는 한국인 근로자의 추방, 개성공단 기업인의 통행 및 기업 활동 전면 중단 등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은 그러나 한국 정부의 태도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기는 했다. 북한 군부는 육로 통행이나 공단 운영의 전면적인 차단까지는 언급하지 않았고, 다음 달 1일까지 보름 이상의 말미를 뒀다. 또 배와 비행기를 통한 민간인 방북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어뒀다.
▽미국 새 정부와의 핵 검증 줄다리기=북한은 북핵 검증의 핵심인 시료 채취(샘플링)를 수용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는 미국의 발표와는 180도 다른 것이다. 미 국무부는 지난달 11일 북한을 테러지원국 지정에서 해제하면서 북한과의 검증 이행사항에 대해 “시료 채취를 포함한 과학적인 절차에 대해 합의했다”고 발표했었다.
시료 채취는 철저하고 정확한 검증을 위한 필수조치다. 하지만 북-미는 시료 채취를 둘러싸고 마치 ‘진실 게임’을 벌이는 듯한 양상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미 간에는 합의문과는 별도로 문서로 정리하지 않은 양해사항이 존재한다”며 “양해사항에 시료 채취 부분이 포함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북한은 합의문만을 기초로 발표를 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북-미가 합의한 검증 방식에 당초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시료 채취 방식이 제외된 것을 확인해 미 국무부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는 시료 채취가 가능하다는 판단하에 취한 조치였던 만큼 시료 채취가 불가능할 경우 앞으로 6자회담은 난관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