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은 이날 밤 늦게 자신이 개설한 토론사이트 ‘민주주주의 2.0’에 올린 ‘심상정 공동대표님의 글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심 대표의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앞서 심 대표는 12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공개편지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은 재임시 한미FTA를 밀어붙인 것이 나라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길이었음을 지금이라도 정직하게 고백하고 국민께 사죄하라”며 고해성사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노 대통령은 “심 대표의 글은 얼른 보면 토론을 제안하는 글인 것 같은데 자세히 보면 토론을 제안하는 글이 아니다”며 “제게 ‘정직하고 통 큰 고백’, ‘고해성사’,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런 것을 토론이라고 할 수는 없고 예의에 맞는 일도 아닐 것이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임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있었던 일에 대한 질문이나 토론 제안에 일일이 응답하는 것은 적절한 일도 역사적 의무를 다하는 것도 아니다”며 “심 대표가 토론의 기회를 달라고 했는데 이곳에 와서 이글이 이어 토론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역으로 제안했다.
노 대통령은 재임시 추진했던 정책 관련 비판에 대해 먼저 “지금의 금융위기가 ‘무분별한 개방’ 때문에 생긴 것이라면 그 개방은 언제 적 개방을 말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는 “동북아 금융허브 정책이나 한미FTA는 아직 발표되지 않아 이번 금융위기와 전혀 관계가 없다”며 “사실에 근거하지 않는 비판은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계에서 개방을 한 나라들 중에는 잘사는 나라도 있고 못사는 나라도 있지만 개방을 안 한 나라 중에는 잘 사는 나라가 없다”며 “결국 개방은 세계적인 대세이고 문제는 그 나라의 경제 수준과 체질에 맞는 개방인가? 무분별한 개방인가?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FTA는 자동차 협상의 종속변수’라는 심 대표의 주장에 대해서도 “아직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제가 먼저 한미FTA를 폐기하자고 깃발을 들어야 하는 것이냐”며 “한국이 갖고 있는 자동차 장벽이 낮아지면 미국산 자동차가 한국 시장을 석권하게 될 것이라는 심 대표의 가정은 사실일까. (장벽을 높이면) 고용 기반이 유지되는 것일까”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제 우리 자동차는 해외 시장에서도 국내 시장에서도 보호정책이 아니라 가격과 기술력으로 경쟁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정말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작은 정부를 지향한 것일까, 과연 그 정부들이 부자의 정부, 강자의 정부였을까”라며 “(두 정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정부의 역할, 복지 지출, 재정에 의한 재분배 효과를 확대했고 부동한 투기 억제 정책과 균형발전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노력은 했으나 경제적 사회적 약자를 위해 심 대표가 주장한 만큼의 진보를 이루어 내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며 “왜 그 정도밖에 가지 못한 것인지는 심 대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심 대표가 이 나라의 주류 정치세력이 되지 못한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고 비꼬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한미FTA 비준을 끌어내기 위해 쇠고기를 양보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 대통령이 그렇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심 대표의 글을 읽다가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에 노 전 대통령도 마음이 편치 않을 것’이라는 대목을 발견하고 좀 혼란스러웠다”며 “그 동안 심 대표는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나, 노무현이나 이명박이나 다 똑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오늘은 저를 이명박 대통령과 구별하여 말해주니 고맙지 않을 수가 없다. 과연 앞으로도 같은 대우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제가 혼란을 느끼는 이유”라고 꼬집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은 이 글을 올린 뒤 40분만인 17일 새벽 0시 10분께 두 번째 글을 올려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심 대표가 정말 ‘정중하고 진지하게’ 토론을 제안한 것인가요? 그 동안 제게 FTA에 관해 질문이나 토론제안을 한 글들을 읽어 보셨습니까? 정말 저의 의견을 듣고자 하는 글들이던가요? 많은 글들이 심 대표의 글처럼 따지고, 비판하고, 속죄를 요구하기 위한 의도가 아니던가요? 그리고 그 내용들이 쉽게 답변할 수 있는 내용들이던가요? 그렇다면 지난날 올라온 글들에 저 대신 답 글을 한 번 써 보시겠습니까?”
그는 “임기를 끝낸 대통령이 임기 중의 모든 문제에 관해 질문을 받고 토론에 응해야 하는 것일까. 어느 나라의 누가 그런 일을 한 일이 있고,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면서 “이제 저도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고 싶은 보통사람이라는 점을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