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의원은 이날 ‘미문화원 농성 주동자 김민석 군과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이라는 제목의 공개편지를 통해 “답답하고 안타깝다. 23년 전의 그 순수했던 민주화투쟁의 열정으로 돌아가라”고 주문했다.
박 전 의원은 1985년 발생한 ‘미문화원 농성점거사건’ 당시 주동자였던 김 최고위원을 변론해 처음 인연을 맺었다.
박찬종 전 의원의 편지 글 전문.
미문화원 농성 주동자 김민석 군과 김민석 민주당 최고위원
85년 5월 3일부터 3박 4일간 미국문화원(당시 을지로 롯데호텔 맞은편 소재)에 73명의 서울시내 소재 5개 대학 학생들이 기습점거 농성한 이른바 ‘미문화원 농성점거사건’이 발생했다.
학생들의 요구는 △80년 5월의 광주항쟁 시 미국이 한국공수부대 등의 투입을 동의했는가 △미국이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출범, 지지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을 따지고 미국대사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후 73명의 학생들은 3박4일간의 농성을 풀고 스스로 경찰에 연행됐다. 검찰은 이들 중 20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기소했다. 이 사건의 핵심주동자는 김민석군(서울대 학생회장), 함운경군(서울대 물리학과, 통합민주당 당직자), 신정훈군(고대, 현 나주시장) 등이었다.
이 사건은 전두환 군부정권 출범이후 강권통치에 숨을 죽여오던 학원가에서 결정적인 대규모 반정부운동의 신호탄이 되었고, 이후 학내외의 민주화운동의 불길을 당긴 사건이 되어 87년 6월 항쟁을 이끌어냈다.
나는 당시 신민당과 민주화추진협의회(공동대표 김대중, 김영삼)의 인권옹호위원장으로서 농성기간 중 학생들과 간접 대화했고, 구속된 이후에는 변호인 단장으로서 최선을 다하여 변론에 임했다.
변론의 방향은 △학생들 주장의 정당성 △한국 민주화의 당위성 △미국의 전두환 정권 출범개입의 부당성 등을 법정을 통해서 국내외에 크게 알리는데 역점을 뒀다.
지금 이 순간 김민석 군 등이 법정에서 추호도 흔들림 없이 당당하고, 논리정연하게 그들의 행동의 정당성과 군부독재정권의 폭압통치를 비판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장하다, 우리의 아들이여! 그때 나는 법정에서 변호인이기 전에 이들이 나의 아들이라는 눈으로 바라다보며 너무나도 의연하고 품격 높은 태도에 속으로 눈물을 감춘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 사건 재판은 언론통제 아래서도 국내외로 널리 알려지게 됐고, 8월의 한여름에 20명 전원이 법정소란죄로 20일간 서대문 구치소의 징벌방에 감치까지 됐다.(그 당시 감치장소는 1.2평의 폐쇄공간이었고 일체의 면회, 운동금지. 오직 변호인 접견만 가능)
나는 변호인 단장으로서 형사소송법이 정한 모든 ‘방어적 공격’수단을 총동원했으며 재판을 오래 끌도록 하는 것도 한 가지 수단이었다.
인하대 교수였던 유영준 교수(나와는 동기동창)를 증인으로 내세워 학생들의 주장의 정당성을 증언케 하였다. 유교수는 그 이후 병을 얻어 1년 뒤 사망했는데, 당시 증언 때문에 정보기관의 시달림을 받았고 그런 과정에서 과음 등이 병을 악화시켜 사망에 이르렀다.
이 재판이 진행 중 전두환 정권은 85년 9월6일 나 박찬종과 조순형 의원 등을 ‘고대앞 시위사건‘에 연류시켜 집시법 위반으로 체포 기소하고, 나의 변호사 업무를 3년 6개월간 정지시켰다.
김민석 군은 이 사건을 통해서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자 별이 됐다.
나는 변호사 업무 정지 이후에도 이 재판을 참관하였고 재판기록을 ‘광주에서 양키까지’라는 책으로 출판해 김민석 군 등의 빛나는 민주화투쟁을 기록으로 남겼다. 나의 뇌리에 김민석 군은 순수, 순진, 단호, 열정, 티끌 한 점 없는 애국의 청년으로 남아있다.
어느덧 그로부터 23년의 세월이 흘렀다. 강산이 두 번 변할 시간이다. 김민석 군은 김민석 의원으로,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세속의 정계에서 승승장구했다. 나는 유심히 지켜보고 가슴으로 성원하고 위대한 정치지도자가 되기를 기원해 왔다. 김 군과 나와의 끈질긴 인연 때문이다.
지금 나는 민주당 당사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집행을 거부하면서 농성중인 김민석 최고위원의 모습을 TV로 지켜보고 있다. 사건의 자세한 경위를 나는 알 수 없다. 아니, 알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답답하고 안타깝다. 김 최고위원에게 바란다. 23년 전의 그 순수했던 민주화투쟁의 열정으로 돌아가 양심에 한 점 부끄럼 없는 결단과 처신을 하라. 김민석 최고위원, 그 때 그 한여름 그 지옥 같은 징벌방에서 나와서 변호사 접견실에 걸어 들어오면서 나를 바라보고 환히 웃던 김민석군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