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의 청남대 사용 기록을 보면 김영삼 28회, 노태우 25회, 전두환 19회, 김대중 15회였고 노무현은 딱 하루 자고 다음 날 청남대 개방행사를 가졌다. 청남대 정문 앞에는 청남대를 주민 품에 돌려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충북 청원군 문의면 주민 5800여 명이 감사의 표시로 돌을 하나씩 모아 쌓은 돌탑이 서 있다.
전두환 대통령 때나 가능한 일이었지, 지금 같은 민주화시대에는 이렇게 너른 터에 대통령 별장을 만들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전 대통령 내외는 청남대 건립 직후 주목향나무를 기념식수했고, 다음 해 4월에는 금송 두 그루, 7월에는 백송 두 그루를 기념식수했다. 귀족적 분위기를 풍기는 희귀목들이다.
노 대통령은 개방 기념식 날 청남대 앞뜰에 마가목을 심었다. 마가목은 우리나라 원산으로 야산 높은 지대에 자생한다. 가을이면 빨간 열매가 지천으로 열려 산새들에게 먹이를 제공하기 때문에 대통령 별장을 개방하는 상징 나무로 삼은 듯하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은 휴가 때면 9홀 골프장에서 ‘대통령 골프’를 즐겼지만 그 이후로 골프를 친 대통령은 없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골프장 옆으로 마사토를 깔아 산책로를 만들고 조깅을 즐겼다. 김대중 대통령은 조깅 코스가 끝나는 곳에 초가정을 세워놓고 하의도와 문의면에서 수집한 농기구를 진열해 놓았다. 초가정에서 호수를 바라보면 섬에 와 있는 기분이 든다.
‘대통령 별장 복원’ 주민 청원
개방 이듬해인 2004년에는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지만 해마다 줄어 지난해에는 57만 명에 그쳤다. 청남대의 평일 관광객은 2000여 명으로 경남 김해 봉하마을보다도 적다. 입장료 수입으로는 도청 직원 14명을 포함해 청소 경비원 90명의 인건비와 관리비를 쓰기에도 모자란다.
문의면 주민 3000여 명은 최근 이명박 대통령에게 ‘청남대를 1년에 몇 차례라도 대통령 별장으로 사용하고, 영빈관이나 정상회담 장소로 써 달라’고 청원을 냈다. 이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의 휴양지이자 정상회담 장소로 이용되는 캠프 데이비드에 초청받고 이를 우의(友誼)의 표시로 해석했는데, 우리도 개방과 통제를 적절히 조화하면 청남대를 캠프 데이비드처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 별장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부터 4곳이 있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청남대 한 곳만 남겨두고 모두 폐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남대마저 없앤 뒤 휴가 때 호텔을 이용하며 경호문제를 비롯한 불편함이 컸다. 조금 지나서 후회할 일을 거창한 개혁이라도 하는 듯 돌탑을 세우고 성대한 반환식을 치른 것이다. 문의면 주민이 대통령 별장 복원 청원을 내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제막한 돌탑은 백성의 원망을 산 고을 원님의 ‘송덕비(頌德碑)’처럼 명색 없게 돼버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 일 중에 역사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부분도 더러 있겠지만 그의 개혁은 요즘 보기 딱할 정도로 무너져 내린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1가구 1주택 종합부동산세도 그런 경우다. 시장을 무시한 부동산정책의 실패와 전국의 공사장화로 천문학적인 보상비가 풀려 서울 강남 3구의 아파트 값이 치솟자 엉뚱하게 알뜰살뜰 집 한 채 마련한 중산층에 세금폭탄을 안겼다. 참여정부 사람들은 헌법만큼 바꾸기 힘든 부동산정책을 만들었다고 떠벌렸지만 바로 노 대통령이 임명한 헌재 재판관들이 종부세의 뼈대를 허물었다.
그는 내신을 금과옥조처럼 존중하고 수능시험을 쉽게 출제해 변별력을 없앤 로또식 대학입시를 교육개혁처럼 생각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거둔 ‘죄’밖에 없는 학생들은 대학입시에서 눈물을 흘렸다.
지속 불가능한 개혁의 실패
임기를 몇 달 남겨두고 없애버린 정부부처 기자실은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나서 곧바로 복원됐다. 없애는 데 국민 세금 들이고, 복원하는 데 국민 세금 들이며 혼란만 부른 꼴통 짓을 노무현 씨는 언론개혁이라고 강변했다. 노 정부가 열심히 대못질을 한 개혁조치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유지될 수 있는 보편타당성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갖추지 못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초 석 달을 촛불시위로 흔들리다가 겨우 촛불이 꺼지자 국제금융위기가 덮쳐 근본적인 개혁은 손도 못 대고 땜질에 급급한 형편이다. 잘못 박힌 대못을 뽑아내고 그 자리에 지속가능한 제도를 심는 일이 중요한데, 종부세 하나를 놓고서도 우왕좌왕하고 있는 모습이다. 딱하다.
황호택 수석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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