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옥씨, 정씨 형제에 차명통장-도장 통째로 넘겨
檢 “정씨 형제 받은돈 상당액 인출”… 사용처 추적
박연차씨 차명수익으로 비자금 조성 여부도 수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수사 중인 세종증권(현 NH투자증권) 매각 로비 의혹 사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물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고교 동창인 정화삼 씨와 그의 동생 정광용 씨는 23일 구속영장이 청구됐고, 노 전 대통령의 형 노건평 씨와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이 수사 대상에 오르면서 점차 권력형 비리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 “건평 씨에게 청탁 여부 조사”=검찰은 정 씨 형제가 “노건평 씨에게 부탁해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해 주겠다”고 말했다는 세종캐피탈 측의 진술에 주목하고 있다.
2005년 12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당시 정대근(수감 중) 농협중앙회장이 건평 씨와 가까운 관계였고, 정화삼 씨 역시 건평 씨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세종캐피탈 측에서는 이 같은 정 씨의 말을 믿고 거액을 건넸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
만약 건평 씨가 정 씨에게서 청탁을 받았더라도 돈을 받지 않았다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검찰에 따르면 정 씨 형제는 농협이 세종증권을 인수한 직후인 2006년 2월 ‘성공보수금’ 명목으로 세종캐피탈의 홍기옥 대표로부터 30억 원을 받았다. 정화삼 씨는 당시 제주의 제피로스골프장 대표를 지내고 있었고, 동생 광용 씨는 경남 김해에서 예식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홍 대표는 정 씨 형제에게 현금이나 수표를 건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명의로 개설된 예금통장과 도장, 비밀번호를 건넸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다단계 판매업체인 제이유그룹의 주수도(수감 중) 전 회장이 로비 대상자에게 차명통장과 함께 비밀번호, 도장을 주고 돈을 찾아 쓰도록 한 것과 같은 방법이다.
검찰 관계자는 “(정 씨 형제가 받은) 돈이 세탁이나 은닉 과정을 거쳤다”면서 “자금 세탁 및 은닉에 관여한 사람 여러 명을 조사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정 씨 형제가 차명계좌에 입금된 돈을 상당액 인출해 사용한 것으로 보고, 이 돈의 용처를 추적 중이다.
▽권력형 비리로 확인되나=검찰 수사결과 지금까지 밝혀진 로비자금은 80억 원에 이른다. 검찰은 구속된 홍 대표가 정 씨 형제에게 건넨 30억 원뿐 아니라 정 전 회장에게 전달한 뇌물 50억 원의 용처도 추적하고 있다.
세종캐피탈이 세종증권을 농협에 판 뒤 성공보수금 성격의 거액을 쓴 데에는 증권사를 인수하려던 농협이 2005년에 인수 대상을 세종증권으로 바꾸고, 세종증권 인수 때 주식 가치를 높게 책정한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농협은 처음에 H증권을 인수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협상을 중단한 뒤 2005년 12월 말 세종증권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농협은 세종증권 주식을 실제 시가 보다 비싼 주당 8000원 이상에 인수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세종캐피탈 측이 정 씨 형제나 정 전 회장 외에 정관계 인사에게 뿌린 각종 로비 목적의 금품까지 추가로 드러나면 이 사건이 사상 최고 액수의 로비사건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005년 검찰은 건설사들에서 96억 원의 로비 자금을 받아 한국수자원공사 등 발주처에 살포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건설업체인 W사 이모(51) 회장을 형사 처벌한 적이 있는데, 세종증권 매각 로비 사건은 단일 사안으로는 이 사건을 능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박연차 회장 수사, 차명수익 용처 관건=국세청이 올 7월부터 박연차 회장을 상대로 벌인 세무조사는 다음 달 5일 끝날 예정이지만, 최근 그 결과가 대부분 검찰로 넘겨졌다.
전례 없이 강도 높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세무조사에서 국세청은 태광실업 경영 과정은 물론 박 회장이 벌인 각종 수익사업 전반을 들여다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의혹이 있었던 내용들 대부분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가 검찰로 넘어왔다. 곧 자료 협조가 마무리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와 관련한 미공개정보를 이용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주식 차명매매는 차익이 최소 100억 원에서 200억 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꾸준히 돌았다. 검찰 안팎에서는 의혹을 사고 있는 다른 재산까지 합치면 박 회장의 차명재산이 엄청난 액수일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들은 박 회장 수사에 대해 아직은 신중하다. 검찰 수사는 먼저 박 회장의 차명재산 조성 의혹을 규명하고, 비자금이 드러나면 그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를 확인하는 순서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