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언론 “어떤 증거도 없다” 말로만 약속 가능성
북한 핵 검증의 핵심 이슈인 시료채취(sampling)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이에 동의했음을 보여주는 어떠한 문서, 음성 및 영상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워싱턴타임스가 24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이 시료채취를 약속했다고 기술돼 있는 문서는 6자회담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에게 보고한 ‘대화록’이 유일하지만 국무부 측은 내부문건임을 들어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어 진위를 가릴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지난달 1∼3일 평양에서 힐 차관보와 회담하면서 시료채취에 동의한다는 약속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한은 “검증 방법은 현장 방문, 문건 확인, 기술자들과의 인터뷰로 한정된다” “합의된 문건에는 시료채취와 관련한 어떤 문구도 들어있지 않다”며 정면 부인해 왔다. 이처럼 미국은 “합의했다”고 하지만 북한은 “그런 적 없다”고 버티면서 ‘진실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이 내놓은 공식 문건은 국무부의 10월 11일자 사실관계 보고서(fact sheet)가 유일하다.
이 보고서는 “힐 차관보와 김 부상은 시료채취를 포함해 북한의 핵 신고서 검증을 위한 북-미 간 합의 내용을 공동문건의 형식으로 성문화(codify)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의 고위 소식통은 최근 “시료채취 등과 관련해 북-미가 합의에 도달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은 ‘문서화는 곤란하다’며 구두 약속하는 형식을 고집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구두 합의 내용을 6자회담 참가국이 공람하는 것도 꺼렸으며 북한의 과거 행태를 볼 때 (서명이 담긴) 문서로 만들지 않은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까지의 정황을 종합해보면 양측이 구두로 합의했지만 문서화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료채취에 대한 북한의 약속은 힐 차관보와 김 부상 간 대화록에만 있는 셈이다.
다만 이 대화록에는 북한이 시료채취를 약속했음을 알 수 있는 내용이 있고 라이스 국무장관은 힐 차관보로부터 이를 보고 받은 뒤 협상 내용을 승인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북-미 간 진실게임은 내달 8일부터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속개되는 6자회담에서 또다시 줄다리기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