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워넣고 양곡할인-연탄쿠폰 집행 대부분 완료
부풀리고 체불근로자 지원 2009억은 올 1년분
당정이 20일 ‘동절기 서민생활 안정대책’을 발표하던 날 서울시 구청에서 생활 형편이 어려운 차상위 계층을 상대로 양곡할인사업을 담당하는 공무원 A 씨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대책 발표 10일 전에 이미 “예산 부족으로 올해 양곡할인 사업은 끝났다”는 안내문을 각 동으로 보내고 더는 접수를 받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당정이 발표한 대책에는 양곡할인 지원사업이 버젓이 들어 있었다.
이처럼 정부의 동절기 서민생활대책에는 허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서민대책을 분석한 결과 7160억 원 예산 중 진짜 새로운 대책으로 분류할 수 있는 예산은 431억 원에 그쳤다. 나머지 6729억 원의 예산은 기존에 이미 진행되고 있는 사업이었고 그나마 이 예산도 상당 부분 부풀려진 것으로 조사됐다. 또 집행이 끝나 앞으로 서민들에게 돌아갈 혜택이 없는 것도 포함돼 있는 경우도 있다.
○ 지원 끝난 사업을 ‘대책’으로 발표
서민대책 중 상징성이 큰 ‘차상위계층 양곡할인 지원사업’과 ‘저소득층 연탄쿠폰 지원사업’에는 각각 65억 원과 76억 원의 예산이 배정된 것으로 발표됐다.
그러나 연탄쿠폰 사업은 이미 9월 말 사업주체인 한국광해관리공단이 각 지자체에 쿠폰 지급을 마쳤고 서민들에게도 10월 중에 배포가 완료된 사업이다.
양곡할인사업도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들이 올해 예산이 바닥나 집행이 어려운 상태다. 대책이 발표되던 20일 서울 은평구와 노원구, 구로구, 강북구, 성북구 등은 올해 양곡할인사업 예산을 거의 다 쓴 상태다.
서울에서 차상위계층의 할인양곡 신청자가 가장 많은 은평구의 경우 10월 신청물량은 1759포(20kg)로 2월 1049포에 비해 68%나 늘었다.
은평구청은 11월과 12월에도 양곡할인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구 예산만으로 집행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예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중단했다. 양곡할인사업은 국비 50%, 시비 25%, 구비 25%의 매칭펀드 방식으로 운영된다.
○ 재탕 사업도 버젓이 포함
서민대책 중 예산이 가장 큰 사업은 체불근로자 생계안정지원 사업으로 총 2009억 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그러나 이 예산은 동절기에만 집행되는 예산이 아니라 올해 관련 사업 예산으로 잡힌 전체 금액이다. 3개월분으로 추산한다면 502억 원으로 1500억 원의 서민대책 예산이 부풀려 발표된 셈이다.
예산금액이 큰 기초수급자 에너지보조금 추가지원 사업(1789억 원)과 동절기 지역노인복지시설 난방비 지원 사업은 국회에서 추경예산을 짤 때 포함된 ‘재탕’ 사업이다.
정부의 서민대책 22개 중 신규사업은 저소득층 유아 동절기 유치원 종일반 지원(158억 원) 등 5건 431억 원에 그쳤다.
서울시 한 당국자는 “정부에서는 예산을 책정해주면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서민들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지자체 공무원들은 정부 발표에 따른 문의를 처리하느라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놨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