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북은 개성공단의 남측 상주인원을 감축하는 이른바 ‘12·1 조치’를 취했다. 그러면서 몇몇 섬유회사 공장 설비를 신의주로 옮기려고 개별 접촉을 했다는 소문도 남쪽에 흘러들었다. 머잖아 북 군부(軍部)가 남측에 한바탕 행패를 부리면서 개성공단을 폐쇄하리라는 것이 북에 드나드는 재미교포 사이의 ‘첩보성 정설’로 흘러 다닌다. 김정일(JI) 집단은 이명박(MB) 정부를 궁지로 몰아 기를 꺾어놓을 수만 있다면 남한 기업과 북한 주민이 졸지에 입을 타격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태세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그 같은 북에 관대하다. 웅변의 달인답지 않게 북의 서해 도발, 핵실험, 금강산 관광객 사살 같은 명백한 잘못에 대해 말을 아낀다. DJ는 포문을 안으로 돌려 이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좌초시킬 남한 내 세력 규합에 나섰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시민사회가 광범위한 민주연합을 결성해 (MB의) 역주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한다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남북 兩金에 협공 당하는 MB
그러자 민주당 정세균, 민노당 강기갑,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즉각 손을 잡았다. DJ는 이들에게 ‘민주연합’이라는 빛나는 견장을 달아주었다. 잊지 않고 MB에겐 ‘독재할 사람’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현 정부를 ‘남북관계를 파탄 내는 정부’라고 낙인찍었다. 선동의 영원한 현역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든다.
MB 정권은 지금 제몫을 다 못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530만 표 차로 당선되고 여당은 국회의석 58%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합법 민주정권이다.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북이 핵을 버리고 개방하면 국민소득 3000달러까지 지원하겠다는 ‘비핵 개방 3000’을 내걸고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 그런 정권의 노선을 전면부정하며 선거를 통하지 않고 무력화(無力化)시키려는 세력이 ‘민주연합’으로 포장됐다. 하기야 북의 JI 집단은 21세기 세계에 유례가 없는 암흑의 전제세습체제를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른다.
DJ의 거사(擧事)는 남한 내의 자칭 ‘민주연합’을 이끌고 DJI(대중+정일)연대를 발진(發進)시킨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가 청와대를 떠난 지도 5년 9개월이 흘렀다. 그 짧지 않은 세월로 보나 살아온 수(壽)로 보나 이제 물러앉을 때도 됐지 싶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북정책) 타도’의 남측 총감독으로 다시 정치 전면에 섰으니 권력 집착인가, 햇볕정책과 노벨 평화상의 훼손이 두려워서인가, 또 다른 세속적 불안 탓인가.
남북관계는 일면 대화하고 일면 대결할 수밖에 없는 구조임을 DJ는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가 북의 과오를 먼저 지적하고 대화 테이블에 나오라고 충고하면서 MB에게 정책의 탄력성을 주문했다면 진정으로 남북문제를 걱정한다는 믿음을 국민한테 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DJ는 북에 따질 것을 따지지도, 대남정책 수정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햇볕정책이 북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음을 시인하기 싫어서일 수 있다. 문제는 햇볕정책의 실패와 실효(失效)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무리를 거듭한다고 국익(國益)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DJI연대가 MB의 대북정책을 붕괴시키는 데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北정권 돕기의 영원한 현역 DJ
남쪽은 줄 것 다 주고도 핵개발을 막지 못한 채 북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지난 10년을 기약 없이 연장할 가능성이 높다. 북은 교류협력(경제적 지원) 문제는 남한과 논의하겠지만 핵 문제는 미국과 협상한다는 원칙을 포기할 리 없고, 기세 꺾인 남측은 뒷돈이나 대고 구경이나 하는 처지가 되기 십상이다. 북-미 관계개선의 비용도 대부분 남한에 청구될 것이다. 북의 2300만 주민은 폭압에 더 시달릴 것이다.
MB 정부가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상당한 정도로 지켜낸다 하더라도 북은 남남(南南)갈등을 핵무기보다도 효과적인 대남 지렛대로 이용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DJ는 자신이 6년 전까지 대통령으로 있던 남쪽보다 북쪽 정권에 훨씬 유익한 인물로 분류될 수 있다.
배인준 논설주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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