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시장 간 李대통령 ‘꽁꽁 언 서민경제’ 확인

  • 입력 2008년 12월 5일 03시 00분


“하루 2만원 벌이 할머니가 대통령 성공 위해서 기도

내가 기도해줘야 하는데…”

李대통령, 할머니에 20년 쓰던 목도리 선물

상인들 “장사 안돼 못살겠다” 하소연 쏟아져

3개월 만에 다시 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서민들은 할 말이 많았다.

9월 초 추석을 앞두고 충남 천안시 남산중앙시장을 찾았을 때보다 더욱 어려워진 경제사정을 반영하듯, 애타는 호소와 불만이 여과 없이 터져 나왔다. ‘성난 민심’ 앞에 이 대통령은 여러 차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대통령은 4일 오전 5시 반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도착했다. 동이 트기 전이라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다. 대통령을 맞는 상인들의 표정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대통령이 위로 겸 한 아주머니에게 “많이 예뻐지셨다”고 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답은 “장사가 너무 안돼서 못 먹고살 정도”였다. 1시간가량 시장을 둘러보는 이 대통령에게 쏟아진 얘기들은 “서민들 잘살게 해 주세요” “진짜 장사 안돼요” “농자재 값은 인상돼 고가(高價)인데 농산물 값은 최악”이라는 말뿐이었다.

“아침 식사를 했느냐”는 이 대통령의 인사에 한 상인은 “돈을 못 벌어서 밥도 못 먹었다”고 답변했다.

이 대통령은 시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무시래기를 파는 박부자 할머니를 보고 두 손을 꽉 잡았다. 고된 삶 때문인지 이 대통령의 손길에 박 할머니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이 대통령이 “하루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박 할머니는 울먹이며 “2만 원 정도고, 많이 팔면 3만 원 정도”라고 답했다. 연방 눈물을 흘리는 박 할머니 탓에 이 대통령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박 할머니 목에 둘러 주며 “선물 하나 주겠다. 20년 쓰던 목도리인데 아까워도 줘야겠다”고 말했다. 이 목도리는 부인 김윤옥 여사가 오래전에 이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으로 이 대통령이 가장 즐겨 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박 할머니에게 “하다 하다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을 줘요. 대통령한테 연락하는 방법 알려줄 테니까”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한 묶음에 5000원 하는 시래기 4개를 사면서 2만 원을 박 할머니에게 건네려 하자 박 할머니는 “안 받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대통령 옆에 있던 민승규 농수산비서관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박 할머니에게 알려주고, 할머니 전화번호도 받았다.

이 대통령은 박 할머니와 헤어져 한 해장국집으로 이동하면서 “(박 할머니가) 하도 울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식당에 들어서서도 “할머니가 대통령에게 ‘잘되길 바라며 기도한다’는데 눈물이 난다. 그 사람을 위해 내가 기도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기도하니…정말 뭉클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시장 한쪽 구석에 마련된 야외난로 옆에서 농민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한참 동안 농업정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농민들이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노동법 적용이 농촌 현실을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하자 “농촌이 이 정도까지 됐는데 이런 문제가 안 다뤄졌다는 것은 현실과 다른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라며 “내가 챙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시장 방문 일정은 이 대통령이 3일 오후 “어려운 서민경제를 직접 나가서 챙겨보겠다”는 뜻을 밝혀 갑자기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12월에 두세 차례 더 시장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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