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도해줘야 하는데…”
李대통령, 할머니에 20년 쓰던 목도리 선물
상인들 “장사 안돼 못살겠다” 하소연 쏟아져
3개월 만에 다시 시장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서민들은 할 말이 많았다.
9월 초 추석을 앞두고 충남 천안시 남산중앙시장을 찾았을 때보다 더욱 어려워진 경제사정을 반영하듯, 애타는 호소와 불만이 여과 없이 터져 나왔다. ‘성난 민심’ 앞에 이 대통령은 여러 차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이 대통령은 4일 오전 5시 반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도착했다. 동이 트기 전이라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다. 대통령을 맞는 상인들의 표정도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대통령이 위로 겸 한 아주머니에게 “많이 예뻐지셨다”고 말을 건넸지만 돌아오는 답은 “장사가 너무 안돼서 못 먹고살 정도”였다. 1시간가량 시장을 둘러보는 이 대통령에게 쏟아진 얘기들은 “서민들 잘살게 해 주세요” “진짜 장사 안돼요” “농자재 값은 인상돼 고가(高價)인데 농산물 값은 최악”이라는 말뿐이었다.
“아침 식사를 했느냐”는 이 대통령의 인사에 한 상인은 “돈을 못 벌어서 밥도 못 먹었다”고 답변했다.
이 대통령은 시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무시래기를 파는 박부자 할머니를 보고 두 손을 꽉 잡았다. 고된 삶 때문인지 이 대통령의 손길에 박 할머니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이 대통령이 “하루 수입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박 할머니는 울먹이며 “2만 원 정도고, 많이 팔면 3만 원 정도”라고 답했다. 연방 눈물을 흘리는 박 할머니 탓에 이 대통령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이 대통령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어 박 할머니 목에 둘러 주며 “선물 하나 주겠다. 20년 쓰던 목도리인데 아까워도 줘야겠다”고 말했다. 이 목도리는 부인 김윤옥 여사가 오래전에 이 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으로 이 대통령이 가장 즐겨 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박 할머니에게 “하다 하다 어려워지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을 줘요. 대통령한테 연락하는 방법 알려줄 테니까”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한 묶음에 5000원 하는 시래기 4개를 사면서 2만 원을 박 할머니에게 건네려 하자 박 할머니는 “안 받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대통령 옆에 있던 민승규 농수산비서관은 자신의 전화번호를 박 할머니에게 알려주고, 할머니 전화번호도 받았다.
이 대통령은 박 할머니와 헤어져 한 해장국집으로 이동하면서 “(박 할머니가) 하도 울어서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식당에 들어서서도 “할머니가 대통령에게 ‘잘되길 바라며 기도한다’는데 눈물이 난다. 그 사람을 위해 내가 기도해야 하는데 그 사람이 기도하니…정말 뭉클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시장 한쪽 구석에 마련된 야외난로 옆에서 농민들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한참 동안 농업정책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이 대통령은 농민들이 ‘농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노동법 적용이 농촌 현실을 알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지적하자 “농촌이 이 정도까지 됐는데 이런 문제가 안 다뤄졌다는 것은 현실과 다른 정책을 펴고 있다는 것”이라며 “내가 챙기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시장 방문 일정은 이 대통령이 3일 오후 “어려운 서민경제를 직접 나가서 챙겨보겠다”는 뜻을 밝혀 갑자기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12월에 두세 차례 더 시장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