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개혁 압력에 ‘곤혹’
이명박 대통령은 농협의 NH투자증권(옛 세종증권) 인수 및 자회사 휴켐스 매각을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4일 농협 및 역대 농협중앙회장들을 강도 높게 질책했다. 대통령의 발언이 전해진 뒤 농협중앙회는 4, 5일 잇달아 긴급회의를 열고 구조조정 방침을 발표했다.
공교롭게 최원병(사진) 현 농협중앙회장은 이 대통령의 경북 포항 동지상고(현 동지고교) 5년 후배다. 지난해 말 취임한 최 회장은 과거의 ‘농협 비리(非理)’와는 무관하지만 고교 선배인 대통령의 질타를 받은 조직의 수장(首長)으로 고강도 개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린 셈이다.
올해 62세인 최 회장은 동지상고와 위덕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으며 경북 경주시 안강농협조합장과 경북도의회 의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대선 직후인 12월 27일 치러진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2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전체 유효 투표수의 52%인 614표를 얻어 당선됐다.
최 회장은 당초 선거 초반에는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선 결과가 나오자 자연스럽게 ‘대통령 당선인’과의 학연(學緣)이 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농협 관계자는 “새로 출범할 정부가 농협에 대한 개혁을 강력히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선 조합장들이 ‘대통령의 고교 후배가 중앙회장이 되면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취임 후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에 더 조심해야 했다. 농업계 일각에서는 “대통령 후배라 정부에 할 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반면에 지난달 농협이 우리은행을 누르고 청와대 입점은행으로 선정되자 뚜렷한 근거도 없이 “역시 실세(實勢) 회장이라 다르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최 회장은 대통령의 질책이 전해진 뒤 상당히 당혹스러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반영하듯 그는 4일 농협중앙회의 부문별 대표이사가 참석한 긴급 대책회의에 불참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