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중국 영빈관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5개월 만에 재개된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는 시종 무거운 분위기였다. 만 5년 동안의 6자회담 역사상 처음으로 의장국인 중국의 공식 개최 발표도 없이 시작한 이번 회의에서 각국 수석대표들은 결과를 예상하기 어려운 듯 표정이 밝지 못했다.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개막사 대신 짧은 인사말만 했다. 그는 검증문제, 비핵화 2단계 마무리, 동북아 평화안보체제를 회담 의제로 제시했다. 각국 수석대표들은 악수 교환도, 포토 세션도 생략한 채 우 부부장의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곧장 회담을 시작했다. 오후 3시로 예정됐던 6자회담은 각국 간 양자 및 다자 접촉이 이어지면서 연쇄적으로 늦어져 오후 4시 30분에야 시작됐다.
▽김계관, 경제 에너지 지원에만 관심=6자 수석대표회의에 앞서 남북 수석대표인 김숙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 간 회동이 낮 12시 10분부터 75분간 이어졌다. 두 사람의 공식 회동은 두 번째다. 상견례 자리였던 7월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 때엔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사망 사건이 발생했다.
김 본부장은 이명박 정부의 상생 공영 정책의 진정성을 설명하고 북핵 문제와 남북관계가 상호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 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북측은 대북 경제, 에너지 지원 문제에만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본부장은 회동 말미에 남북한의 육로 통행을 제한한 북한의 ‘12·1 조치’ 등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김 부상은 “남북관계는 내가 담당하는 분야가 아니어서 답변하지 못하겠다”고 했다고 김 본부장은 전했다.
▽김숙, “북핵 검증 투명성 있는 정의가 있어야”=미국과 한국은 이날 검증의정서의 형식과 용어에 관계 없이 실질적으로 ‘시료채취(sampling)’를 보장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면 된다는 유연한 태도를 취했다.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시료채취는 여러 가지 검증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김숙 본부장은 “검증과 관련해 투명성이 있는 정의가 있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말했다.
검증의정서에 시료채취로 해석이 가능한 다소 애매모호한 문구를 삽입하거나 ‘비공개 양해각서’ 형식으로 시료채취를 명문화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북한은 이날도 어떤 형식이든 시료채취 문제는 지금 단계에서 논의할 사안이 아니라는 기존 견해를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각국 수석대표들은 9일 중국이 회람할 검증의정서를 놓고 집중 논의한다.
▽러시아, IAEA 역할 강조=이번 회담에서는 러시아의 역할에 관심이 쏠렸다. 러시아는 이날 북한과 2시간 동안 양자회동을 갖고 검증에 있어서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힐 차관보도 7일 “군축과 검증에 대해 경험이 많은 러시아가 좀 더 많은 역할을 할 단계”라며 러시아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번엔 북-미 간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6자회담이 개막됐다. 그동안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엔 북-미가 양자대화를 통해 가닥을 잡은 뒤 이를 추인하는 형식의 6자회담이 열렸다. 하지만 북-미는 4, 5일 싱가포르 양자회동에서 검증 문제에 대해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