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문구보다는 의미가 더 중요” 한발 물러서
‘과학적인 국제검증기준 적용’ 식으로 접점찾아
검증대상-주체 등 이견 여전… 최종합의 ‘먼길’
9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이틀째 열린 북핵 6자회담에서 참가국들은 최대 쟁점이던 시료 채취(sampling) 문제에 관해 접점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증 주체, 미신고시설 검증 문제 등에 관해선 여전히 한국 미국과 북한이 이견을 보이고 있어 검증의정서 채택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시료 채취’ 보장하는 다른 표현에 합의=회담 소식통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시료 채취와 관련된 의정서 초안의 내용은 이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며 “(시료 채취는) 문구 자체보다는 의미가 들어가면 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미국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도 ‘의정서 초안에 과학적 절차와 시료 채취 등 미국의 요구가 반영돼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취지로 대답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이 이날 제출한 검증의정서 초안에는 ‘시료 채취’라는 용어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대신 ‘과학적 절차를 포함한 국제적 검증기준을 적용한다’는 식으로 ‘시료 채취’를 보장할 수 있는 다른 표현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료 채취 문제는 그동안 미국과 북한이 합의 여부를 놓고 ‘진실게임’까지 벌였던 민감한 사안으로 이번 회담의 최대 쟁점이었다. 참가국들이 시료 채취 문제에 대해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6자회담이 급물살을 타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최종 합의까지는 산 너머 산=외교부 당국자는 그러나 “시료 채취 문제에 대해 접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참가국들이 검증 방식에 합의해 검증의정서를 채택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시료 채취라는 큰 고비를 일단 넘었지만 검증의 대상과 주체 등이 여전히 쟁점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검증 주체와 관련해 한국과 미국, 러시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적극적 역할을 주장하고 있다.
회담 소식통은 “IAEA의 역할이 커져야 좀 더 신속하면서도 정확하게 국제적 기준에 따라 검증이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1990년대 초 북핵 1차 위기 당시 IAEA와 특별사찰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은 적이 있다. 그만큼 IAEA에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신고시설에 대한 검증 문제도 쟁점이다. 한국과 미국 일본은 미신고시설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이 제한 없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북한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증 활동을 언제부터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견이 노출됐다. 한국과 미국은 비핵화 2단계(핵 불능화)가 마무리되기 전 조속한 시일 안에 시작돼야 한다는 견해를 폈으나 북한은 3단계(핵 폐기) 때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갈등요인 된 ‘대북 에너지 지원-검증의정서 연계’ 방침=한국이 8일 전체회의에서 밝힌 ‘대북 에너지 지원-검증의정서 연계’ 방침도 쟁점이다.
한국 수석대표인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실무그룹 의장국으로서 북핵 검증의정서 초안을 각국에 회람토록 했다”며 “검증의정서 내용과 대북 에너지 지원 문제를 포괄적으로 연계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핵화 1, 2단계를 규정한 ‘2·13 합의’ 어디에도 검증 문제가 적시되지 않았다는 논리를 폈다는 게 회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베이징=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