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이상득 스트레스

  • 입력 2008년 12월 12일 20시 10분


이명박 정부의 첫 청와대 비서진 인선 때 얘기다. 당시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장다사로 비서실장은 한 언론사 기자로부터 “(당신이)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가는 것 같던데 맞느냐”고 묻는 전화를 받았다. 긴가민가해 이곳저곳 알아보니 사실이었다. 아무래도 보고를 해야 할 것 같아 오후 11시쯤 이 부의장의 자택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 부의장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듯 “그래?”라고 되물은 뒤 한참 뒤에야 “알았다”고 하더라는 것이다. 권력 주변의 생리로는 납득이 잘 안 가는 일이었다.

▷얼마전 민정수석실로 자리를 옮긴 장 비서관은 사석에서 그때를 떠올리며 “이상득 의원은 그런 사람이다. 자기 비서실장이라도 대통령의 인사(人事)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하는 법이 없다”고 했다. 장 비서관은 전두환 정권 시절 민정당 공채 5기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이회창 총재 보좌관, 당 부대변인 등을 지내면서 권력의 이면을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는 “(이 의원이) 기업 오너 밑에서 전문경영인을 오래 한 탓인지 과거 권력자들과는 스타일이 다른 것 같다”고 했다. 이 의원은 코오롱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그러나 세상의 시선은 다르다. 오죽하면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이 의원은 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 정무위 의원 성향분석’이란 제목의 문건을 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면서 또 한 번 구설수에 올랐다. 문건 자체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닐 수 있다. 이 정도 문건은 서울 여의도에선 늘 떠돌아다닌다. 하지만 홍준표 원내대표가 지적한 것처럼 ‘대통령의 형에게 정보를 주고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이 제공했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이 의원은 그제 일본 도쿄에서 “대통령 친인척의 폐해나 오너 경영의 문제는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고 했다. 기업 CEO 출신에 국회의원만 6선이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꼭 인사나 이권에 개입해서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삶이 팍팍하고 어수선한 시절엔 ‘만사형통’이라는 말 자체가 국민에게 스트레스일 수 있다. 이 의원은 “내가 무슨 죄라도 지었느냐”고 했지만 한국사회에선 ‘대통령의 형’인 게 죄(罪)가 될 수 있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