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건강 이상으로 공개 활동을 중단했다가 언론에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10월 초순을 기점으로 북한의 대남 공세 양상에 질적인 변화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논평이나 성명 등을 통한 ‘말’보다 군 간부 등이 직접 현장에 나타나는 ‘행동’이 눈에 띄게 늘었으며, 대북 전단(삐라) 살포 등 특정 주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민간 교류 차단을 위협하고 실행하는 게 두드러진다.
본보는 올해 1월 1일부터 12월 17일까지 북한이 취한 중요 대남 공세 35건을 분석해 이 같은 특징을 파악했다.
북한의 대남 공세 조치는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나오기 전인 3월 24일∼7월 8일(13건)과 이후인 10월 2일∼12월 17일(14건)에 집중됐다.
▽‘얼굴’ 드러내는 북한 군부=북한 군부는 10월 2일과 지난달 27일 남측 군 관계자들을 직접 불러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고 육로 통행 제한 가능성을 예고했다.
지난달 6일엔 북한 국방위원회 김영철(중장) 국장이 개성공단의 현황을 파악하고 돌아갔다. 이후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통행을 제한, 차단하는 이른바 ‘12·1조치’가 나왔다. 김 국장은 17일 또다시 개성공단에 모습을 나타냈다. 더욱이 그는 “개성공단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며 향후 좀 더 엄격한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도 시사했다. 한 북한 전문가는 “왜 그가 개성까지 직접 왔겠느냐”며 “불길한 조짐”이라고 해석했다.
군부의 잇따른 ‘얼굴 드러내기’는 김 위원장 건강 이상설이 제기되기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 제기 이전 13건의 메시지를 대부분 언론 매체를 통한 성명과 논평, 전화통지문 등으로 전달했다. 그 내용도 남한의 대북정책과 군사훈련, 인권문제 제기 등에 대한 통상적인 반박이 주를 이뤘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군의 실제 인물을 앞세워 남한 정권을 위협하고 내부 동요를 단속하려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자신들이 ‘최고 존엄’으로 여기는 김 위원장에 대한 군부의 충성 표시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대남 협박의 방식도 달라져=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을 전후해 남한과의 거리두기도 점차 심화됐다.
북한은 3월 말부터 당국 간 관계를 단절했지만 민간 교류는 유지하는 ‘통민봉관(通民封官)’ 전술을 써 왔다. 그러나 10월 이후 민간관계의 엄격한 제한 차단이라는 강수를 들고 나왔다.
대남 협박의 방식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남측 당국자를 추방한 뒤 남측의 대북정책과 군사 훈련에 대한 불만을 조목조목 제기하고 남측의 대응을 기다렸다. 그러나 10월 이후엔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통행의 제한 및 차단조치를 예고하고 이를 단계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김정일 와병 중에는 대남 강경책 없어=특히 북한은 김 위원장이 병상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별다른 대남 공세를 하지 않았다. 이 기간에 남측을 향한 주요 메시지는 단 세 건에 불과했다.
김 위원장이 9월 5일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담화는 남한 당국을 비난하는 어떤 내용도 담고 있지 않다. 당·정·군 5대 권력기관이 공화국 창건 60돌 경축 중앙보고대회에 보고한 문건도 남한에 대한 원칙적인 경고의 메시지만을 담고 있다.
한편 북한의 대남 메시지를 전달한 주체는 군이 19건으로 가장 많고 당 11건, 내각 5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