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제와서야? -2년전 고위공무원단 신분보장으로 손 못대게 해
DJ-盧정권 땐? 靑주도로 각부처 1급 70∼95% 임기초반 물갈이
“수년 전 정치인 A 씨가 한 부처 장관으로 가니까 부처 공무원들이 ‘전문성도 없는데 얼마나 버티겠느냐’며 새 장관을 잘 모시지 않았다. 이에 A 씨가 돌연 1급 간부 전원을 교체했고 그때부터 비교적 부처가 잘 돌아갔다고 한다.”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17일 교육과학기술부와 국세청 1급 간부들이 잇달아 사표를 제출한 배경을 묻자 이렇게 말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총력전을 펴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사회의 느슨해진 고삐를 죄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1급 간부를 교체하는 인적쇄신 카드라는 것이다. 이는 291명(청와대 포함)의 1급 공무원이 공직사회에서 갖는 상징성을 염두에 둔 분석이다.
1급은 극소수 엘리트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무원이 현실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최고위직이다. 정무직인 장차관을 보좌하는 이들은 각 부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퇴임 후에는 산하기관장으로 자리를 옮겨 ‘제2의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도 많다.
많은 공무원의 희망인 1급 간부에 대한 개혁 드라이브는 일선 공무원들에게 “제대로 일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는 긴장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 동시에 1급 직전의 간부들에게는 승진 기회라는 ‘당근’으로 충성 경쟁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도 정권 초 1급 간부들에 대한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김대중 정권에서는 1급의 95%를, 노무현 정권에서는 70%를 임기 초반에 물갈이한 것으로 안다”며 “노무현 정부 때까지는 각 부처 1급 인사는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 개입했다”고 말했다. 현 청와대는 각 부처의 경우 차관 이상에 대해 공개적으로 인사에 간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주변 참모들도 지난해 대선 직후 10년 만에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은 만큼 새 국정철학과 비전에 맞는 인사들로 주요 부처의 1급들을 교체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그러나 530만 표 차의 대선 압승은 “장차관만 바꾸면 하부 조직은 알아서 바뀔 것”이라는 낙관론을 낳았다. 여기에다 “지나친 인적 변화는 정권을 놓친 좌파 세력의 반감을 유발한다”는 보수세력 특유의 ‘웰빙형’ 전망까지 겹치면서 1급 교체론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막상 이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도 좌파 정권 10년을 거친 관료사회는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또 다른 여권 관계자는 “관료사회는 거의 정권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더라”며 “일부 부처는 장차관의 업무 지시가 제대로 먹히지 않았고 청와대 직원들은 한동안 각 부처를 찾아다니며 일일이 국정철학을 설명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정부는 다시 1급 교체 카드를 검토했지만 4월 총선을 앞두고 공무원 표심(票心)을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보류됐다. 이어 불거진 쇠고기 시위와 경제위기 등으로 최근까지 공직사회 다잡기를 위한 기회가 없었다.
여기에는 노무현 정부가 2006년 고위공무원단 제도를 도입하면서 2년 이상 근무성적이 최하위가 아닌 경우 등을 제외하면 1급 간부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할 수 없도록 신분보장 장치를 해 놓은 것도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다 지난달부터 여권 내에서 공직사회 개편론이 제기되면서 행정안전부가 국가공무원법 중 1급 신분 보장 관련 조항을 삭제 또는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후 교과부와 국세청 1급 간부들이 잇달아 사표를 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