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알 살라마, 아르빌… 귀국하면 결혼날짜부터 잡아야죠”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2월 19일 03시 07분



가슴 설레는 장병들자이툰부대 장병들이 14일 이라크 아르빌을 떠나 쿠웨이트로 향하는 공군 다이만부대의 C-130 수송기 안에서 귀국의 흥분과 기대로 환하게 웃고 있다. 아르빌(이라크)·캠프버지니아(쿠웨이트)=윤상호 기자
가슴 설레는 장병들
자이툰부대 장병들이 14일 이라크 아르빌을 떠나 쿠웨이트로 향하는 공군 다이만부대의 C-130 수송기 안에서 귀국의 흥분과 기대로 환하게 웃고 있다. 아르빌(이라크)·캠프버지니아(쿠웨이트)=윤상호 기자
윤상호 기자 동행 취재

아르빌 공항 관제소 “안녕히 가십시오” 한국말로 작별인사

장병들 “가는 곳마다 ‘꾸리’ 외치며 따르던 아이들 못잊을 것”

차량-탄약 등 군수물자 130여개 컨테이너에 담겨 해상운송


이라크 북부 아르빌을 떠나 쿠웨이트의 미군기지를 거쳐 한국에 이르는 약 1만 km의 자이툰부대 철수 여정은 감동 그 자체였다.

○ “마알 살라마(안녕) 아르빌”

13일 오전(현지 시간) 아르빌의 자이툰부대 주둔지 국기게양대.

푸른 하늘에 나부끼던 태극기가 천천히 내려지자 장병들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라크 완전 철수를 하루 앞두고 거행된 국기하기식에서 장병들은 며칠 뒤 가족과 만난다는 기대감에 설레면서도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아르빌 시내에서 마지막 경호임무를 수행한 박성진(육사 58기) 대위는 “가는 곳마다 ’꾸리(코리아)’를 외치며 달려오던 쿠르드 어린이들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거의 모르던 쿠르드 주민들이 지금은 한국 제품을 최고로 여기고, 한국 TV드라마를 즐길 만큼 ‘한류 열풍’이 뜨겁다고 박 대위는 전했다.

장병들은 남은 짐을 꾸리거나 쿠르드자치정부(KRG)에 공여(供與)할 부대장비를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부대 검문소에서 폭발물 탐지임무를 수행하던 군견들도 철수를 위해 이동견사로 옮겨졌다.

자이툰부대의 개선문 철수작전에 따라 기자는 이날 오후 장병들과 버스를 타고 아르빌 공항으로 이동해 쿠웨이트로 가는 공군 C-130 수송기에 올랐다.

기체가 굉음을 내며 이륙하자 창밖으로 사막과 초원지대가 끝없이 펼쳐졌다. 기체는 주둔지 상공을 선회한 뒤 서서히 기수를 돌렸다. 장병들은 창밖을 바라보며 작별인사를 했다. “마알 살라마(안녕) 아르빌….”

○ 귀국 선물 꾸러미엔 대추야자가…

14일 정오 쿠웨이트의 알리 알 살렘 공군기지. 자이툰부대의 마지막 철수병력 50여 명이 탄 공군 다이만부대의 C-130 수송기 한 대가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출국 때까지 머물 미군기지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장병들은 가족과 애인의 사진, 파병생활 동안 쓴 일기장 등을 꺼내 보며 감회에 젖었다. 귀국 선물 꾸러미에는 대추야자와 홍차, 머드팩 등이 담겨 있었다.

이상현 중사는 “내년 3월쯤 결혼할 계획이다. 귀국하자마자 양가 상견례를 하고 날짜를 잡을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날 마지막 철수임무를 맡았던 조종사 김영태(공사 37기) 중령은 특별한 감동을 경험했다. 아르빌 상공을 벗어날 때쯤 공항관제소와 한국말로 작별교신을 나눈 것. 김 중령은 “지상 2000m 상공에서 ‘안녕히 가십시오’라는 무선교신을 듣자 가슴이 뭉클했다”며 “평생 잊지 못할 비행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 여기는 캠프버지니아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17일 이른 새벽. 아직 동이 트기 전이라 어두컴컴한 겨울사막에 애국가가 힘차게 울려 퍼졌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로 떨어졌지만 장병들은 흐트러짐 없이 아침점호를 마쳤다.

여기는 이라크를 떠나온 장병들이 귀국에 앞서 머문 쿠웨이트의 미군기지 캠프 버지니아다.

사막 한가운데 조성된 이 기지는 약 400만 m² 규모로 수백 개의 야전텐트와 식당, 영화관, 영내매점(PX) 등을 갖췄다.

장병들이 모처럼의 여가를 즐기는 사이 박선우(육군 소장) 자이툰부대장 등 지휘부는 미군기지에서 약 110km 떨어진 슈아이바 항을 찾아 파병 장비 및 물자의 해상 철수상황을 최종 점검했다.

축구장 3배 넓이의 한 야적장에서 태극마크가 부착된 차량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장병들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차량과 탄약 등 장비물자 2000여 종은 130여 개의 컨테이너로 옮겨져 1만5000t급 화물선에 실린다. 이 배는 이달 말 출항해 내년 1월 말 부산항에 도착한다. 화물선이 해적 출몰지역인 말라카해협을 통과할 때에는 우리 해군의 4500t급 구축함이 호송작전을 벌이게 된다.

○ 고향 앞으로

18일 오후 태극마크가 선명한 사막색 전투복 차림의 장병들은 캠프버지니아에서 인근 무바라크 공항으로 이동한 뒤 마침내 고국행 전세기 2대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쿠웨이트 주재 한국대사관 관계자들의 기내 송별인사를 끝으로 모든 이륙 준비가 끝나자 전 장병은 지휘부의 구령에 따라 “자이툰사단 아자! 아자! 아자!” 하고 힘차게 구호를 외쳤다.

김상돈 주임원사는 “이번에 대학 수시모집에 합격한 딸을 꼭 안아주고 싶다”며 눈을 지그시 감았고, 박주직 병장은 “부모님이 평소 좋아하는 오리 요리를 다 같이 모여 실컷 먹고 싶다”고 말했다.









아르빌(이라크)·캠프버지니아(쿠웨이트)=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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