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연말 쟁점 법안 처리를 놓고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했다. 두 당은 18일 각각 의원총회를 열고 ‘연내 통과’와 ‘강력 저지’ 의지를 다졌다. 이날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을 둘러싼 격렬한 대치는 ‘예고편’에 불과해 보인다. 내년 1월 9일까지 열리는 임시국회의 남은 회기 동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미한 정국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나라 “정부가 일하게 해줘야”… 민주 “몸으로 저지”
40여개 법안 상정 못해… 내달 9일까지 대치 계속될듯
▽여야 전의(戰意) 다지기=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연말까지 이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법을 국회에서 어떤 방식을 동원하더라도 반드시 처리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가 내년에 제대로 일하려면 국회가 주요 법안을 처리해 멍석을 깔아 줘야 한다는 것이다.
박희태 대표도 “속도전이 우리가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며 “이제 참을 만큼 참았고 논의할 만큼 논의했다. 그래도 되지 않을 때는 돌파밖에 없다”고 강력한 단결을 주문했다.
이들이 강한 톤으로 연내 일괄 법안 처리 방침을 밝힌 것은 청와대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이날 ‘장외투쟁’을 예고했다.
박병석 정책위의장은 “더는 국회에서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할 길이 없다는 점이 확인된 만큼 국민에게 직접 호소할 수밖에 없다”며 “장외투쟁에 대해 지도부와 의원들 사이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당초 민주당은 전력을 총집중해 막을 ‘악법’과 반드시 처리할 ‘민생법안’을 분류해 리스트를 발표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방침을 바꿔 상임위 진행 자체를 ‘원천 봉쇄’하기로 했다.
민주당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가능성을 의식해 이날 의장실에서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와 정무위, 보건복지가족위 법안심사소위는 민주당 의원들이 회의 진행을 막는 바람에 법안을 상정하지 못하고 파행됐다.
한나라당 손범규 의원은 이날 외통위 충돌 과정에서 민주당을 향해 “저러니까 군사쿠데타가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야당이 강하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 법안에는 민주당이 반대하는 △불법행위 집단소송법 △과거사 통폐합법 △미디어 관련법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의 법률이 포함됐다. 한나라당은 19일 법안점검회의에서 처리 법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한나라당은 이들 법안을 연내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 중에서 아직 상정조차 되지 않은 법안이 40여 개에 이른다. 상임위 상정→소위 상정→상임위 처리→법사위 처리→본회의 처리라는 과정을 거치려면 13일 남은 연내에 모두 처리하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1월 임시국회 종료일인 1월 9일까지 여야 간 대치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은 소속 의원이 상임위원장인 상임위의 경우엔 위원장이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일사천리로 진행할 방침이다. 최대 쟁점 상임위인 정무위와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등은 한나라당 소속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야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임위의 경우 ‘위원장이 개회(開會) 및 의사 진행을 거부하면 위원장이 소속하지 않은 교섭단체 간사가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한다’는 국회법 50조 5항에 따라 한나라당 간사가 위원장의 직무를 대행해 법안을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야당이 위원장 의사봉을 넘겨주지 않고 시간을 끌 경우엔 처리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몸싸움 끝에 상임위를 통과시켜도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막힐 가능성이 높다. 유선호 법사위원장이 민주당 소속이어서 한나라당은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 외통위 질서유지권 논란… 17대 땐 통합민주당도 발동 ▼
국회법엔 ‘의원이 회의장 질서문란땐 제지 가능’ 규정
野 “회의 하루전 발동은 위법” 與 “예방차원서 정당”
1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 과정에서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에 대한 정당성 여부를 놓고 여야 간에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현행 국회법 145조는 ‘의원이 위원회 회의장에서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하게 할 때 위원장은 이를 제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 조정식 원내대변인은 이날 “회의 도중에만 발동할 수 있는 질서유지권을 회의 하루 전날부터 발동한 것은 명백한 국회법 위반”이라며 “특히 경위를 동원해 야당 상임위원의 회의장 진입을 막은 것은 특수공무집행 방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 위원장 측은 “질서유지권은 회의의 원만한 진행을 위해 위원장에게 주어진 포괄적 권한”이라며 “원활한 회의 진행을 위해 예방적 차원에서 정당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민주당의 전신인 대통합민주신당도 17대 국회에서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느라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적이 있다.
17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둔 올해 2월 당시 민주신당 소속인 김원웅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은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 체결한 FTA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 등이 4층 회의실을 점거하자 김 위원장은 회의실을 2층으로 옮긴 뒤 질서유지권을 발동해 출입을 통제하고 동의안을 상정했다. 이 동의안은 처리되지 못한 채 17대 국회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이후 정치적 입장이 바뀐 민주당은 이번엔 FTA 비준동의안 상정에 반대로 돌아선 것이다.
2005년 10월엔 당시 열린우리당 소속 임채정 통외통위원장이 ‘마라케시 의정서 부속 양허표 일부 개정 비준동의안’을 상정하면서 민노당의 회의실 점거에 대비해 하루 전날 질서유지권을 발동하고 출입을 통제한 바 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