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상정은 18일 오후 2시 불과 3분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한나라당은 비준안의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상정 및 소위 회부를 위해 전날인 17일 저녁부터 의원 및 당직자, 국회 경위를 동원해 외통위 회의실을 지켰다. 민주당, 민주노동당은 이날 분말 소화기, 전기톱, 해머까지 동원해 회의장 진입을 시도해 큰 충돌이 벌어졌다.
▽한나라당 외통위 선점=한나라당은 17일 박진 외통위원장이 야당의 회의장 기습 점거에 대비해 질서유지권을 발동한 후 이날 저녁부터 의원 및 당직자, 국회 경위 30여 명을 동원해 밤새 회의장을 지켰다.
18일 오전 6시 반경 국회 본청 외통위 회의실에 집결한 정몽준 남경필 이춘식 등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은 당직자 및 국회 경위들과 함께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의 진입을 막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회의장 안의 책상, 의자 등 집기로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쳤으며, 이 과정에서 먼저 회의장에 들어간 민주당 최규식 의원이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감금되기도 했다.
회의장 밖에서는 국회 경위 및 한나라당 당직자 일부가 야당 의원들의 회의장 진입을 저지했다.
민주당은 외통위 전체회의 개회를 막기 위해 이날 새벽 박 위원장과 한나라당 간사인 황진하 의원 자택에 의원들을 급파했으나 두 사람은 집에 없었다.
뒤늦게 한나라당 의원들의 회의장 선점 사실을 안 민주당은 오전 8시 시작된 의원총회를 서둘러 끝냈으며 원혜영 원내대표를 필두로 한 의원과 당직자 150여 명은 외통위 회의장으로 부랴부랴 몰려갔다.
오전 9시 반경부터 오후 2시까지 4시간여 동안 민주당과 민노당 당직자들은 정과 대형 해머로 문을 부수며 회의장 진입을 시도했지만 한나라당의 바리케이드가 워낙 견고해 진입에 실패했다.
오전 11시경 당직자들이 외통위 회의장 문을 부수는 동안 민주당 원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와 마지막 회동을 갖고 전체회의 연기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결국 개회 예정 시간인 오후 2시 야당 소속 외통위 위원들을 배제한 채 단독으로 한미 FTA 비준안을 상임위에 상정하고 소위원회에 회부했다. 한나라당은 3분 만에 한미 FTA 비준안 상정을 처리한 뒤 회의장과 연결된 외통위 전문위원 출입문을 통해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 외통위 회의장=여야가 극심한 몸싸움을 벌인 외통위 회의장 앞은 대형 해머, 전기톱이 동원돼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오전 9시 반경부터 맨손으로 회의장 문을 부수기 시작한 민주당 당직자들은 여의치 않자 “의자 가져와. 의자”라고 외치며 복도에 있던 의자를 동원해 내려치기 시작했다. 일부 당직자들은 급기야 대형 해머까지 갖고 와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군중 속에서 “다친다. 사용하지 마”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흥분한 당직자들을 막지는 못했다.
민주당과 민노당 당직자들은 국회 경위 30여 명과 격렬한 대치를 하다 오전 11시경 한쪽 문을 뜯어내는 데 결국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한 당직자가 소형 전기톱을 사용해 바리케이드로 사용된 책상과 소파를 절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통위 회의장 문 안쪽에는 회의장을 점거한 한나라당 의원들이 책상, 의자, 소파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철통같이 쳐놓았고 바리케이드 일부가 부서져 나갔지만 민주당 당직자들은 진입에 실패했다.
국회 경위들은 무단 진입하는 민주당 당직자의 신원을 확보하기 위해 캠코더로 촬영을 시작했고 민주당 당직자들은 은박지로 얼굴을 가리며 저항하는 과정에서 양측 간에 심한 고성과 욕설이 오가기도 했다.
오후 1시 45분경 감정 대립이 격화되면서 민주당은 복도에 있던 소화전을 끌어다 바리케이드 너머로 즉석 물대포를 쐈다. 이에 회의장 안에서 한나라당 측은 복도를 향해 분말 소화기를 분사하면서 외통위 회의장 앞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분말 소화기는 복도에 있던 민주당과 민노당 당직자, 언론사 기자, 카메라맨을 가리지 않고 난사됐다. 복도에 있던 100여 명 대부분이 흰 가루를 뒤집어쓴 채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또 오후 1시 반경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외통위 회의장 앞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회의장 밖 복도에 있던 대형 유리문이 파손되면서 한나라당 보좌관이 손가락을 크게 다쳐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오후 2시 3분경 전체회의가 시작된 외통위 회의장 안에서 의사봉 치는 소리가 들렸다. 복도에 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다 끝났다. ×× 같은 놈들”이라며 허탈해하며 주저앉았다.
한나라당 외통위 소속 의원들은 2시 10분경 한미 FTA 비준안 상정을 마치고 당직자 및 국회 경위들의 보호를 받으며 유유히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