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시바우 前 주한美대사 퇴임후 첫 인터뷰

  • 입력 2008년 12월 20일 02시 59분


“김정일 사망땐 개혁개방 가속화

한국은 北 급변사태 대비해야”

“오바마 정부 6자회담 큰 틀 유지할것

한미정상 만남 시기보다 교감이 먼저

盧 전대통령은 상식 벗어난 매버릭”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만간(sooner or later) 죽을 것이고 한국은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국대사는 16일 미국 워싱턴 내셔널프레스빌딩 동아일보 지국에서 가진 퇴임후 첫 언론인터뷰에서 "유럽에서의 경험에 비춰 볼 때 독재자의 사망은 개혁개방을 가속화시키고 인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다.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향후 북한의 지도체제가 어떻게 바뀌든 새로운 지도자는 인민의 삶의 질이나 복지를 지금처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며 이전과 같은 김일성 가문의 철저한 통제도 더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재임 시절 북한의 핵실험도 있었고 6·25전쟁 종전선언과 평화체제에 대한 논의도 있었는데….

"2006년 7월의 미사일 발사는 애피타이저, 10월의 핵실험은 메인요리 격이었다.(웃음) 하지만 핵실험 움직임은 그해 여름부터 포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놀라지 않았고, 오히려 단거리와 중장거리 미사일 7발이 동시에 발사된 것이 놀라웠다. 한국은 핵실험을 막아 보려고 당근을 많이 제시했지만 충분한 레버리지가 되지 않았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김 위원장이 이미 연초에 내린 결정이었던 것 같다."

―종전선언 논의는 어디까지 갔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북한 땅에 단 1g의 플루토늄이나 농축우라늄은 물론 핵무기도 없는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경우 평화체제 논의의 일부분으로 종전선언을 고려했다. 하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를 창조적으로 해석해 별도의 이벤트성으로 추진하려고 했다. 2007년 9월 시드니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여러 차례 조르듯 '좀 더 명확히 해 달라'고 말했던 것도 그런 이유 탓이었다."

―종전선언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나.

"한미 당국 간 협의에서 종전선언을 위한 대화는 한반도 내에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에 합의했다. 판문점이 가장 논리적인(logical) 장소라고 생각한다. 남북을 오가며 대화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평양행은 가능성이 있었나.

"라이스 장관의 평양방문 성사가능성에 대해 당국차원에서 심각하게 논의한 적은 없다. 다만 6자 외교장관 회담은 2007년 4월 구체적인 날짜까지 고민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 당시 나는 미국에 공무가 있어 워싱턴에 일시 귀국해 있었는데 라이스 장관이 6자 외교장관 참석을 위한 중국방문 날짜를 발표할까봐 가슴을 졸였었다. "

―2차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해 미국과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8월에 남북정상회담을 한다는 전격 발표는 워싱턴으로서도 다소 놀라운 내용이었다. 미국 정부에서는 연말에 치러지는 대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북한 홍수 등의 이유로 8월 회담이 10월로 연기되면서 (한국정부가) 더더욱 국내용으로 이용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커졌다. 물론 외교통상부나 총리실 등에서 서해상 북방한계선(NLL) 등 안보이슈는 한미간에 조율된 가이드 라인에서 합의할 것이라는 설명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 정부내에서는 NLL을 협상수단으로 삼아 '다른 것'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김장수 당시 국방장관의 NLL 사수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노 전 대통령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미국에서 유행하는 표현으로 '매버릭(무당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참모진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견해가 강하고 상식을 벗어나는 사고를 자주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지그룹이 반대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노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궁합은 어땠나.

"'마음이 통하는(meeting of minds)' 관계는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아시아태평양경제정상회의(APEC)를 계기로 2005년 11월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최악이었다. 당시 양 정상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에 대한 대북경제제재문제를 놓고 한 시간 넘게 논쟁을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은 작정한 듯 '(2005년) 9·19 공동성명이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이런 식으로 하느냐. 미국이 잘못하는 것이다'라며 2500만 달러의 북한자금을 풀어달라고 했고, 부시 대통령도 '북한의 행동은 명백한 위법행위다. 증거가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묵인하느냐. 달러를 위조하고 있지 않느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두 정상은 자기의 생각을 고집했고 결과는 무승부였다."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을 중간평가 한다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6자회담을 전체적으로 평가하겠지만 기본적인 전략이나 목표는 유지될 것으로 본다. 다만 대북협상에서 실질적인 성과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내준 것 아닌가 하는 점은 숙고해 볼 문제다. 이번 검증의정서 문서화 실패의 교훈이라면 북한과는 구두약속이 아닌 확실한 문서화를 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볼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한국의 역할이 한미동맹의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현 국제시스템에서는 어느 나라도 무임승차자를 원하지 않는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가해 지도국의 반열에 오른 한국은 다른 나라가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기여할 부분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기여 역시도 한미동맹을 위한 의무감보다는 세계의 지도국가로서 역할을 한다는 차원으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은 한국이 어떤 기여를 하는 것을 원하고 있는가.

"부시 대통령도 그렇고 차기 오바마 행정부도 한국이 전투병력을 파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미국으로서는 향후 아프가니스탄에 적어도 2만 명 이상의 병력을 파병해야 하는 만큼 동맹국이 기여를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미국 정부가 한국에 압력을 넣지는 않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진짜 문제는 효과적인 통치(governance)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분야의 기여만큼 비군사분야의 기여가 절실한 이유다. 부패와의 전쟁, 치안력 확보, 교육시스템 확립 등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무궁무진하다. 서남아시아와 중동의 안정은 한국의 국익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한미 정상회담의 적절한 시기를 조언한다면….

"가장 이상적인 시기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원론을 말한다면 차관보급까지 내각 주요 인사에 대한 상원 인준이 이뤄진 뒤 국무장관, 국방장관 수준의 원활한 업무 협조가 구축된 다음에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첫 만남에서 마음이 통하느냐는 것이지, 얼마나 빨리 만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당선인은 6개월 내에 오바마 당선인에 대한 시험가능성을 우려했는데….

"사실에 입각한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현실화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부시 행정부 취임 이후 발생한 9·11 테러가 좋은 예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북한의 김 위원장 등 도발적인 지도자들의 행동가능성이 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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