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로비의 계절’

  • 입력 2008년 12월 22일 02시 58분


연말 법안처리 앞두고 관련기업-단체 의원 설득 총력

증권선물거래소 임직원 “공기업 편입 막아주세요”

“자통법 일부조항 유예를” 은행 ‘기부금 구애’ 나서

“민영화때 조직 지키자” 산업은행 전담팀 꾸려

“보좌관님, ○○에서 전화 왔는데요.”

“벌써 몇 번째야. 의원님 안 계신다고 해요.”

요즘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실에는 민원 전화가 빗발친다. 연말 법안 처리를 앞두고 이해당사자들의 로비가 봇물 터진 듯 밀려들고 있다.

로비는 특히 기획재정위원회와 정무위원회 등 경제 관련 상임위 의원실에 집중된다. 개정이 예정된 법률이나 새로 바뀌는 굵직한 정책이 많기 때문이다.

기재위와 정무위 소속 의원실에는 최근 한국증권선물거래소(KRX) 임직원들이 다녀갔다. 이 방 저 방 차량용 휴대전화충전기 등 기념품이 놓여 있다.

증권선물거래소는 감사원 권고에 따라 내년부터 공기업에 편입될지가 조만간 확정된다. 방만한 경영에다 ‘국가가 부여한 독점적 사업권으로 인한 수입이 전체의 절반을 넘는다’는 게 정부가 내놓은 공기업 편입의 근거다.

기재위 소속 한 의원은 “거래소 정규직 평균 연봉이 지난해 기준으로 9700만 원가량인데 공기업이 되면 당장 고(高)임금 논란에 시달릴 것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은행연합회를 구심점으로 잘 뭉치는 시중 은행들은 증권사를 견제하기 위해 정무위 의원들과 보좌관들을 주로 만난다.

내년 2월부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는데, 이 법에 따르면 증권사도 은행의 고유 영역인 지급결제 기능을 할 수 있다.

지금은 증권사가 은행의 가상계좌를 빌려 사용하고 있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이체수수료도 부담해야 한다.

시중은행들은 자통법 개정안에서 증권사 지급결제 기능을 유예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를 위해 직원들을 50명 안팎씩 묶어서 세액공제가 되는 10만 원짜리 기부금을 각 의원에게 지원하는 형태로 로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무위 소속 여당 의원은 “연말에 정치인들이 제일 거부하기 어려운 게 기부금”이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다른 의원실의 한 보좌관은 “하도 안 만나주니까 국회 근처 식당에 특정 의원실 이름으로 선금을 맡겨놓고 언제든지 가서 식사를 하라는 은행도 있다”고 귀띔했다.

한국산업은행은 올해 들어 국회 전담팀을 별도로 꾸려 산은 민영화와 관련한 정보 수집 및 우호 여론 조성 등을 시도하고 있다.

산은의 최대 관심사는 민영화 자체보다는 민영화 과정에서 조직이 보전될 수 있느냐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 산은 직원들의 낮은 경쟁력을 지적하며 정책금융 기능을 제외한 일반 상업은행 기능은 다른 곳에 합병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면서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리먼브러더스 인수 시도 등으로 정치권의 시각이 아주 나빠져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워한다.

보험사들은 금융회사와 제조회사를 자회사로 둘 수 있게 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의원회관을 자주 들르고 있다. 일부 보험사는 최근 고위 임원단이 정무위 소속 의원실을 방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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