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정부의 대북(對北)정책에 대한 비판은 미국 내에서도 뜨겁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설에서 북핵 검증서 채택 실패를 '라이스 장관의 마지막 추락’이라고 규정하고 ‘진정한 핵 폐기보다 외교적 진전의 모양새를 우선시해 실패를 자초했다’고 비판했다. 라이스 장관과 크리스토퍼 힐 6자회담 수석대표가 검증에 대한 북한의 구두(口頭)약속을 믿고 부시 대통령을 설득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이끌어냈지만 결국 북한의 말 뒤집기에 당했다는 것이다. 라이스의 논리대로라면 그와 힐이 바보가 됐음을 인정한 꼴이다.
▷WSJ는 북한이 구두건 문서건 간에 약속을 지킨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북한이 미국과 한 약속을 여러 차례 어겼기 때문에 그런 지적을 지나치다고 할 수도 없다. 북한은 심지어 거짓 정보로 미국을 농락한 일도 있다. 미국은 1990년대 말 북한 금창리에 지하 핵시설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현지 사찰을 했다가 천연동굴로 밝혀져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북한은 미국을 골탕 먹이고 유유히 3억 달러어치 식량 60만 t을 챙겼다. 지금쯤 북한 김정일 집단은 라이스의 발언을 전해 듣고 ‘속은 줄 이제야 깨달은 모양이군’이라며 킬킬대고 있지 않을까.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구소련과 대화하면서 “신뢰하되 검증하라(Trust but verify)”고 강조했다. 미국은 그런 자세를 견지해 구소련과의 대결에서 이겼다. 북한이 어떤 상대인지를 알기 위해 8년 동안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부시 정부는 한 달 뒤 ‘북한은 믿을 수 없는 국가’라는 결론을 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버락 오바마 정부에 레이건의 지혜가 필요하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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