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열쇠확보-25일 밤부터 진입 개시
丁대표 “어떤 비용 치르더라도 악법 저지”
당내 일각 “폭력으로 해결하려해” 비판
민주당이 26일 국회 본회의장 점거라는 초강경 카드를 동원한 것은 주요 쟁점 법안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그동안 정부 여당이 연내 처리를 목표로 하고 있는 은행법과 집시법, 언론관계법 등 주요 쟁점 법안들을 ‘MB(이명박 대통령) 악법’, ‘반민주 악법’ 등으로 규정하고 ‘절대 불가’를 천명해 왔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은행법 등 40여 개의 주요 쟁점 법안들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며 “한나라당의 강행 처리에 대해 절대 의석수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정세균 대표는 “어떤 비용을 치르더라도 모든 방법을 동원해 악법들을 막아낼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또 원혜영 원내대표도 “민주주의를 위해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로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초 한나라당의 직권상정은 빨라야 29일 이후에 가능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선수를 쳐 미리 점거하면 물리력도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25일 오후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와 전략회의를 잇달아 열고 26일 본회의장을 점거하기로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주 초 본회의장으로 통하는 본청 3층 이윤성 국회부의장실 앞 쪽문 열쇠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1차로 25일 오후 9시경 이 문을 통해 신학용 김재균 의원이 먼저 들어갔다.
이어 극도의 보안 속에 26일 오전 의총을 10여 분 만에 끝내고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민주당의 이날 본회의장 점거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처럼 여당 의원들에 의해 처절하게 끌려 나가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당직자와 보좌진이 들어갈 수 없는 본회의장에서 82명(구속 중인 정국교 의원 제외)으로는 172석의 한나라당과 국회 경위들을 막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 여당의 강행 처리가 여론의 지지를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끌려 나가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시민단체와 좌파세력 등 전통적 지지층의 급속한 결집을 유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듯하다.
또 현재 점거 중인 국회의장실, 정무위원회 등 3개 상임위에서의 물리적 저지는 수적인 부족으로 한계가 있어 전선을 축소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다.
하지만 당내에선 비록 소수의 목소리이긴 하지만 본회의장 점거를 두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비난도 나온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우리는 한나라당이 18일 야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단독 상정한 것을 의정활동 방해라고 비난했고, 여론의 지지도 받고 있다”면서 “똑같은 일을 하고 어떻게 한나라당을 비난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정세균 대표가 28, 29일경 국면 타개용 중대 제안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최재성 대변인은 이날 열린 긴급 기자간담회를 통해 “파국으로 치닫는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 대표가 당리당략을 떠난 중대 제안을 할 것”이라면서 “제안은 이명박 대통령이 아닌 여당에 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정 대표의 중대 제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당내에서는 ‘조건 없는 선(先) 민생법안 처리, 후(後) 쟁점 법안 논의’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와 함께 김형오 국회의장,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등과의 회동을 제안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