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따라 퇴임이후 정치인생 기로에
여야 협상시한 제시후 법절차 따를듯
《여야가 중점법안을 놓고 극한대치 상황을 이어가면서 연말 정국이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한나라당은 28일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중점 처리 법안 85개를 확정해 발표했다. 민주당은 “‘MB 악법’에 타협은 없다”며 법안 통과 절대 저지를 재천명했다. 여야는 이번 대결의 성패가 내년 정국의 향방을 결정하는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최소한의 ‘민생 법안’을 중심으로 여야가 막판 대타협의 반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일각의 기대와는 달리 양측 모두 실력대결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여야는 호의적인 여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명분 쌓기에 총력전을 펴고 있다.》
임시국회 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의 극한 대립이 해법을 찾지 못하면서 김형오 국회의장의 고민이 한층 깊어지고 있다.
김 의장은 28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로부터 85개 법안에 대한 직권상정을 공식 요청받았다. 법안 처리의 공은 사실상 김 의장에게 넘어갔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여야 중 누가 더 효과적으로 김 의장을 압박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 의장으로선 이번 선택에 본인의 ‘정치 인생’까지 걸어야 할 상황이다.
고성학 국회의장정무수석비서관은 “김 의장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고 국회의 존엄을 되찾는 방법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의장 측은 민주당이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는 상황에서 직권상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다만 ‘연내 처리’에 대해선 다소 무리가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의장 측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민감한 쟁점 법안을 나중에 처리할 수 있다고 밝힌 점은 김 의장이 ‘쟁점 법안은 여야 협의로 처리하자’고 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장실에서는 임시국회 종료 시한이 남아 있는데 무조건 연내 처리는 힘든 게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내심 김 의장이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내년 1월 8일 직권상정’ 카드가 여야 모두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데 있다.
여권, 특히 청와대에선 내년 1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의 신년연설 전에 국회 상황이 종료되기를 바라고 있다. 국민에게 희망을 줘야 하는 새해 벽두부터 국회에서 몸싸움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번 임시국회가 ‘이명박 정부’의 핵심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보고 김 의장의 결단을 바라고 있다.
김 의장은 국회의장 퇴임 후 한나라당 대표 같은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 여기에다 19대 총선 출마까지도 고민하고 있다. 당 복귀 이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권의 요청에 귀를 닫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사실 여권 내에선 김 의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따뜻하지만은 않다. 추가경정예산 직권상정 거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상정 거부 등으로 그는 청와대와 불편한 관계였다.
하지만 김 의장이 ‘여권의 뜻’에 따라 직권상정을 할 경우 국회 파행의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그동안 쌓아온 ‘중도적 합리주의자’라는 이미지도 훼손될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지금은 최대한 예우하며 심리적 압박을 하고 있지만 직권상정을 선택할 경우 그 이후 공격 강도는 가늠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29일 오전 10시 30분 부산 서면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는다. 그는 여야에 협상 시한을 주고 그때까지 협상이 안 되면 위헌 법안과 경제 살리기 법안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김 의장은 주말 동안 경기 수원시 용주사와 지역구인 부산 영도에서 ‘칩거’했다. 김 의장은 28일 충무공 이순신의 ‘한산도가’ 중 ‘일성강적경첨수(一聲羌笛更添愁·어디서 들려오는 피리 소리가 남의 애를 끊나니)’를 인용하며 심적인 괴로움을 드러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