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은 울고 있는데… “이런 국회 세계 어디도 없다”

  • 입력 2008년 12월 30일 03시 02분


■ 비난여론 고조

○일은 뒷전

정쟁으로 82일이나 지각개원

2622개 법안중 11.2%만 처리

○발목잡기

9월 금융위기 이후 11월까지

경제관료 업무일 절반 국회에

○국격 실추

다수결원칙 대신 몸싸움 난무

‘무법 불법 폭력의 전당’ 불명예

무법, 불법, 폭력….

2008년 12월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여야가 민의의 전당에 앉아 국가가 직면한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기는커녕 당리당략에 매몰돼 국회를 장기간 파행시키고 있는 데 대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치권은 상임위원회 배분 문제를 놓고 다투다 82일이나 늦게 개원하더니 9월 이후 금융위기 여파로 한국 경제가 격랑에 내던져진 시점에서도 그들만의 정쟁을 계속하며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강만수 장관과 주요 실·국장 등 기획재정부 고위 공무원 40여 명은 금융위기가 터진 9월 이후 11월까지 업무일의 절반을 국회에 불려나갔다. 당시 야당 의원들은 정부의 환율정책을 놓고 강 장관을 질책하는 질의를 50차례 이상 반복했다.

다른 부처 장관들도 국회에서 벌어진 정쟁에 휘말려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한 국무위원은 최근 사석에서 “국회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 국회에 주어진 행정부 견제의 권한이 발목잡기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주요 민생 관련 법안, 경제 살리기 법안을 비롯한 각종 법안은 제때 처리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개원 이후 접수된 2622건의 법안 중 293건(11.2%)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이와 별도로 국회가 한 일이라곤 은행의 해외 채무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동의안을 처리한 것과 새해 예산안을 법적 시한을 넘겨 처리한 것뿐이다.

특히 토론과 대화를 통한 다수결의 원칙 등 민주질서가 마비됐다는 지적이다.

18일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단독 상정 당시 국회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에 대해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헌정 사상 그렇게 심한 육박전은 처음 봤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이 12일째 국회의장 집무실과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등 쟁점 상임위를 점거하고 본회의장을 나흘째 점거하는 초유의 사태가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벌어지고 있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으로 만들어진 172석의 한나라당은 구심점을 잃은 채 소수 야당의 벼랑 끝 전술에 끌려 다니면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29일 최근 국회 파행에 대해 “이런 국회는 세계에 없다. 이럴 바엔 다수 의석을 확보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말한 것도 민주질서가 파괴된 국회에 대한 비난 여론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이내영 교수는 “국회의 폭력사태를 예방하고 민주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국민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국회가 파행될 경우 일정 시한이 지나면 국회를 정상화할 수 있도록 국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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