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MB악법’ 등 자극적 단어로 여론 호소
與 ‘이념법안 → 사회법안’ 용어조차 혼선
여야 간 연말 ‘법안 전쟁’이 격화되면서 선전전에서는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압도하고 있다.
민주당의 사활을 건 여론 선전전에 한나라당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끌려다니는 무기력한 모습을 드러냈다.
야당의 체질상 여당보다 선전전에 강한 측면을 감안해도 한나라당은 민주당의 ‘구호 정치’와 이슈 선점에 일방적으로 밀리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복잡다단한 사안을 한 가지 구호로 압축하는 선전 전술을 쓰는 바람에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안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키면서 상황을 오도하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은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는 주요 쟁점법안을 한마디로 ‘MB 악법’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명박 정부의 핵심적인 개혁정책에 대해 민주당은 이 한마디로 사안을 압축해 공격하고 있다.
이는 복잡한 법안을 구구절절이 설명할 필요 없이 단순 명쾌한 용어를 사용해 법안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여론의 지지를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당초 ‘반민주 악법’ ‘시대착오적 악법’ 등의 용어를 섞어 쓰기도 했지만 원내전략회의를 거쳐 ‘MB 악법’으로 통일했다.
‘MB 악법’ 외에 민주당은 신문·방송법 개정안을 ‘언론 장악법’으로 부르고 있다. 또 집회 및 시위법 개정안은 ‘마스크침묵시위처벌법’, 사이버 모욕죄는 ‘네티즌 통제법’으로 부른다. 국가정보원 기능을 강화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은 ‘안기부 부활법’으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은 ‘휴대전화 도청법’을 사용한다. 여기다 금산 분리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은행법 개정안은 ‘재벌 은행법’으로 새 이름을 붙였다.
‘이름 짓기(네이밍·naming)’를 통한 선전전을 동원해 여론을 자극하는 감성 정치의 일환이다.
논리적인 싸움을 벌이기 위해선 민주당이 내세우는 ‘악법’ 주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대응 논리를 개발해야 하지만 민주당이 선점한 구호정치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민주당은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를 담은 한나라당의 경제 관련 개혁법안을 ‘경제 악법’이라고 통칭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한나라당이 중점 추진 법안으로 뽑은 법안 중에는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자본금 규모를 확대하는 기업은행법 등 야당도 찬성하는 법안이 많다. 그러나 이 법은 민주당이 점거 중인 정무위에 계류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제 악법’으로 불리고 있다.
민주당이 ‘휴대전화 도청법’이라고 부르는 통신비밀보호법 역시 유선전화에 허용되고 있는 합법적인 전화 감청을 휴대전화에까지 허용하자는 것으로 17대 국회 때 여야 합의가 이뤄졌던 사안이다. ‘재벌 은행법’이나 ‘언론장악법’ 또한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은 임시국회 초기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 국정원법 개정안 등을 ‘이념법안’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박희태 대표가 “민생법안이 어디 있고, 이념법안이 어디 있느냐”고 지적하자 이 대신 ‘사회개혁법’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한나라당이 임시국회 초기 ‘법안 전쟁’이라는 표현을 먼저 꺼낸 것도 패착이라는 지적이다. 경제 살리기를 앞세워 정기국회에서 예산안 처리에 성공한 이후 ‘민생과 경제를 완성시키는 국회’를 앞세워야 할 시점에 ‘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여야 대치 상황을 고착시켰다는 것이다.
경희대 김민전(정치학) 교수는 “여야가 홍보전을 치르면서 순간적으로 어느 부분은 누가 더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은 모두 여론에서 점차 멀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여야가 국회를 볼모로 국민을 외면하는 정치를 계속한다면 정치는 국민에게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 임광희 동아닷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