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면책조건부 진술제’ 法정의 부합여부 논란
권익위 산업계 애로 현장 상담 ‘기업옴부즈맨’ 도입
법제처 입법기간 120일 → 30일로 줄여 비상체제로
李대통령 “힘있는 사람 가진사람 먼저 법 지켜야”
법무부가 29일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새해 업무계획은 ‘법질서 확립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국가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부정부패 비리의 사슬을 끊기 위해 검찰의 수사역량을 강화하고 법 집행을 엄정히 하면서,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과 서민에게는 법률 지원 확대와 제도 개선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방안은 기존 법률 체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 충분한 검토와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면책조건부 진술제도 도입=제3자의 범죄사실을 진술하면 진술자 자신의 죄를 감면해주는 면책조건부 진술제도는 검찰의 권력형 비리 수사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부패범죄의 대표적 유형인 고위공직자 뇌물 사건의 경우 뇌물을 준 쪽도 함께 처벌하도록 돼 있어 물증을 확보하거나 자백을 받아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처벌을 감경해주는 조건으로 진술하는 것이 가능해져 뇌물수수나 불법로비 수사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큰 범죄를 밝혀내기 위해 작은 죄를 덮어주는 것이 법 정의에 부합하느냐는 비판의 소지가 있다. 또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법원의 영역인 유무죄 및 형량 판단 권한까지 갖게 되면 이를 통제할 마땅한 장치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사이버범죄 대응 강화=메이저 신문 광고주 불매운동, 경제위기와 관련한 유언비어 유포 등 인터넷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종범죄에 대한 수사력을 강화하기로 한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도산법·신탁법 개정, 경제난 활로 될까=법무부의 이번 업무보고에는 여느 해보다 기업 지원 방안이 대거 포함됐다.
채권자들의 동의를 받아 회생절차를 시작한 기업에 대해 금융기관이 운영자금을 대출해줄 경우 우선변제권을 부여하는 도산법 개정안은 당장 내년 1월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장래에 수익을 내서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회사가 일시적인 자금난으로 흑자 도산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기존 부채 상황에 관계없이 채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어 대출에 대한 리스크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1961년 제정 이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아 변화한 기업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 온 신탁법도 유연하게 바뀐다.
현행법에서는 개발이 예정된 100억 원 상당의 토지를 부동산 수탁회사에 신탁하면 3, 4년 뒤에야 자금 회수가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해당 토지에서 발생할 개발 이익을 미리 증권화해 처분할 수 있어 기업의 자금 조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민권익위원회는 기업애로 사항을 전담하는 ‘기업옴부즈맨 제도’와 유해식품 제조·유통과 같은 공익침해 행위로부터 국민권익을 보호하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기업옴부즈맨 제도를 통해 기업이 애로를 겪는 현장에 전문조사관을 파견해 민원을 상담하고 해결책을 제시하겠다는 것이다.
법제처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책을 신속히 법제화할 수 있도록 ‘비상 입법지원 체계’를 가동하겠다고 보고했다. 통상 3월 말에 수립하던 정부입법계획을 내년 1월 말까지 수립하고, 입법 절차 완료 기간을 평균 120일에서 30일로 줄이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합동 업무보고에서 “힘 있는 사람, 가진 사람, 공직자들이 먼저 법을 지키고 공정하게 한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최근 한 외국 전문기관이 한국의 국가브랜드 가치를 평가한 것을 예로 들면서 “한국의 브랜드 가치가 국내 유명 대기업 브랜드보다 못한 것으로 나왔고, 일본의 50분의 1 정도 수준”이라며 “(브랜드 가치가) 낮은 원인을 분석해 보니 첫째가 준법의식 미약이고 둘째가 노사문제, 셋째가 북한이었다”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