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안에 정비하겠다던 각종 정부위원회가 국회 파행으로 근거 법률을 개정하지 못해 당초 목표의 36.4%만 정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이범래 의원이 30일 행정안전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연내 정비하겠다고 발표한 305개 정부위원회 중 111개 위원회만 정비됐다.
행안부는 올해 5월 운영 실적이 저조하거나 기능이 중복되는 위원회 273개를 감축하고 내실화를 위해 32개 위원회의 소속이나 위원장 직급을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중 지금까지 106개 위원회가 감축되고 5개 위원회의 소속이나 위원장 직급이 조정됐다.
▽법률 근거 위원회 17%만 정비=위원회 정비 실적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는 여야 간 대치로 국회 파행이 계속되면서 법률 정비를 제대로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연내 정비하겠다고 밝힌 위원회 중 법률에 근거를 둔 위원회는 228개. 이 중 올해 정비된 위원회는 17.1%(39개)에 불과하다. 반면 대통령령에 근거한 위원회는 연내 정비 대상 77개 중 72개(93.5%)가 정비를 끝냈다.
정부가 스스로 정비할 수 있는 위원회는 대부분 정비를 완료했지만 국회가 법률을 개정해야 하는 위원회는 거의 정비되지 못한 것이다.
일례로 접경지역심의위원회는 접경지역을 지원하는 업무를 맡고 있으나 최근 운영 실적이 거의 없어 행안부의 폐지 대상에 올랐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접경지역지원법 개정안을 제출했지만 이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파행으로 상정조차 되지 못한 상태다.
▽각 부처, 상임위 실적과 비례=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처의 위원회 정비 실적은 국회의 상임위 운영 실적과 비례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법안을 처리한 국회 기획재정위 소관 부처인 기획재정부의 경우 연내 정비 목표였던 14개 위원회 중 8개 위원회의 정비가 완료됐다.
기재위 소관인 관세청의 경우 연내 관세체납정리위원회와 관세포상심사위원회를 폐지하는 등 관세법 관련 3개 조항이 12일 모두 개정됨에 따라 목표를 달성했다.
반면에 9월 이후 법안 처리를 전혀 하지 못한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관 부처는 위원회 정비 실적이 저조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연내 정비 대상 위원회 10개 중 한국문화산업진흥위원회 등 법률에 근거한 7개 위원회를 통폐합하려 했지만 전혀 손을 대지 못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연내 7개 위원회를 정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내년 예산 낭비 우려=올해 정비가 안 된 위원회는 내년에도 계속 운영되기 때문에 예산과 인력 낭비가 불가피하다. 대부분 불규칙적으로 열리는 자문위원회이기 때문에 운영비가 많이 들지는 않지만 각 부처는 위원회를 열 때마다 국가 예산을 써야 한다. 더욱이 내년 각 부처의 운영 계획에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무총리 산하 국가기록관리위원회와 대통령기록관리위원회를 하나로 통합할 방침이다. 이 경우 올해 각각 6168만 원, 1552만 원이 들어간 예산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근거 법률 개정안이 처리되지 않아 내년에도 따로 운영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행안부 관계자는 “정부가 위원회 정비 목적으로 국회에 제출해 계류 중인 법안이 162개에 이른다”며 “연내 법 개정이 안 되면 내년에도 이들 위원회는 존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