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인사 마무리해 놓고도 발표 연기
일각 “속도전 70년대식 용어” 우려도
새 정부 개혁법안들의 국회 처리가 지연되면서 청와대의 국정운영 ‘속도전’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재정지출 확대를 위한 근거 법안들이 국회에서 발목이 잡혀 있어 정책 추진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 법안 처리 이후로 잡아놓은 각종 인적쇄신을 비롯한 개혁 작업도 덩달아 늦어지고 있다.
▽선(先) 법안처리, 후(後) 인적쇄신=법안 처리 지연에 가장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은 인적쇄신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31일 “청와대와 부처 등 각종 인적쇄신이 법안 처리에 앞서 진행될 경우 ‘인사 검증’을 둘러싸고 여야 간은 물론이고 여권 내부에서조차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면서 “이럴 경우 법안 처리는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에 국회에서 개혁법안들이 통과된 뒤 각종 인사가 신속하게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1급 공무원들이 일괄 사표를 낸 감사원 교육과학기술부 농림수산식품부 총리실 등은 후속 인사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발표 시점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인적쇄신과 개각도 개혁법안들이 모두 처리된 뒤 적당한 시점에 전격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여권 고위 관계자가 “개각은 국회 법안 처리에 달려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출발 신호만 기다리는 청와대=청와대는 개혁법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만을 기다리며 행동으로 옮길 준비를 사실상 마친 상태다.
박형준 대통령홍보기획관은 “경제살리기 미디어 금융 지역균형발전 등과 관련된 법안들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바로 시행령 제정 및 개정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며 “개혁 정책들에 대한 홍보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경제살리기와 일자리 창출 노력의 가시적인 성과가 내년 상반기 중에 나타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 경제살리기 속도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속도전’ 용어 적절성 논란=청와대가 연일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일각에서는 이 용어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다며 용어 수정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빨리 예산을 집행해 경기를 부양하자는 당초 취지가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오히려 ‘북한 천리마 운동 같다’ ‘1970년대식 느낌’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같은 뜻이라도 ‘속도전을 해야 한다’와 ‘지금 필요한 것은 스피드다’라는 표현은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 측면에서 전혀 다른 인식과 느낌을 준다”고 덧붙였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