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전원 서명 ‘직권상정 요청서’ 金의장에 전달
선진 “민주서 협의든 합의든 2월처리 하겠다 밝혀”
민주 “사실무근… 임시국회 끝나는 8일까지 갈 것”
민주당의 국회의사당 점거로 파행을 빚고 있는 국회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질서유지권이 발동된 상태에서 새해를 맞게 됐다. 여야는 쟁점법안 처리를 위해 지난해 12월 31일 밤까지도 막판 대화를 시도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한 채 파행으로 얼룩진 한 해를 마무리했다.
○ 한나라당 직권상정 공식 요청
이날 여야는 상호 압박과 대화를 병행하며 막판 해법 찾기를 시도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김 의장에게 임시국회에서 처리할 법안 85개에 대한 심사기간을 지정하고 이날 안에 직권상정 절차를 마무리해 달라는 내용을 담은 요청서한을 전달했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 국회의원 172명의 요구사항’이라는 서한에서 “경제 회복을 위한 민생법안의 처리를 열망하는 국민의 성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직권상정을 촉구했다.
한편 이날 오후 5시 45분 한나라당 박희태,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마지막 대화를 시도했다.
양당 대표의 대화 재개 방침으로 한나라당 홍준표, 민주당 원혜영, 자유선진당 권선택 원내대표가 곧바로 국회 운영위원장실에서 회담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홍 원내대표는 회담 이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야당과) 이따가 다시 만나 의견차를 좁힐 수 있을지 얘기하겠다”며 “협상이 결렬되면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늦게라도 대기해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즉각 “상황 변화가 없기 때문에 오늘은 만날 이유가 없다”고 거부했다.
이에 앞서 오전에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표를 각각 만나 중재를 시도했다.
선진당은 보도자료에서 “정 대표가 이 총재와의 회담에서 ‘합의 또는 협의라는 단어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고 문제가 되는 법안들은 논의해서 2월까지 처리하자’고 밝혔다”고 말했지만 민주당이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전날 한나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미디어법을 2월에 ‘협의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시한을 못 박지 말고, 처리 방식도 ‘합의 처리’로 하자고 주장해 협상이 결렬됐다.
○ 해 넘긴 여야 국회 대치
국회에선 전날에 이어 하루 종일 긴장 상태가 이어졌다.
국회 경위 66명과 방호원 90명, 국회경비대 소속 경찰 170여 명은 전날 밤과 마찬가지로 출입자의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하면서 외부인의 본청 출입을 막았다.
질서유지권 발동 이후 국회 본청은 국회의원과 본청 상시 근무자, 출입기자만 드나들 수 있다. 국회사무처는 출입자 확인을 위해 본청 후문 1층 출입구를 뺀 나머지 6곳의 출입구를 모두 막았다.
출입구 주변에서는 본청에 들어오려는 민주당 당직자와 보좌진은 물론 출입증을 지참하지 않은 국회 근무자 등과 방호원들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민주당 보좌진은 “한번 나가면 다시는 들어오기 어렵기 때문에 임시국회가 끝나는 8일까지 본청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장기전 될 듯
여야의 협상 시도가 번번이 물거품이 되면서 사태가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과 보좌진이 안팎으로 봉쇄한 본회의장을 국회 경위들의 힘만으로 뚫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다 김 의장도 이른 시일 안에 결단을 내리기보다는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직권상정의 명분을 쌓으려는 기류가 엿보인다.
국회사무처는 당장 물리력을 동원하기보다는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좀 더 시간을 끌면 장기 농성에 지친 민주당의 힘을 소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