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관’ 놔둔채 애매한 합의… ‘2차 입법전쟁’ 예고

  • 입력 2009년 1월 7일 03시 00분


■ 핵심 쟁점법안 타결 주요내용

여야가 6일 쟁점법안 처리 방식에 합의함에 따라 지난해 12월 10일부터 계속된 대치 국면이 일단 정상화되게 됐다. 하지만 여야는 미디어 관계법과 금산분리 완화법 등 핵심 사안에 대해선 처리 시한조차 정하지 않은 채 ‘합의 처리를 위해 노력한다’는 문구로 미봉해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은 상태다. 특히 한나라당이 이번 협상에서 사실상 민주당에 백기를 든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 입법의 취지를 크게 손상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미디어 관계법

의견 접근 2건 - 첨예 대립 6건 분리 처리하기로

여야 대립이 덜한 2건과 이해가 엇갈리는 6건으로 나눠 분리 처리하기로 했다. 언론중재법과 전파법은 8일 마감되는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고 방송법 신문법 인터넷멀티미디어법(IPTV법) 정보통신망법 디지털방송활성화법은 ‘이른 시일 내에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이다. 합의 처리 법안은 한나라당이 방송산업 육성과 기존 지상파 방송의 독과점 구조를 깨기 위해 추진했지만 민주당이 극력 반대해 상임위 상정 시기조차 못 정했다. 더욱이 신문법은 일부 메이저 신문을 과도하게 규제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까지 받았지만 이번 협상 결과로 언제 개정될지 불투명하게 됐다.

금산분리 완화

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 “합의 노력” 어정쩡 표현

미디어 관계법과 함께 민주당이 가장 반대해 왔던 사안이다.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등 2건이다. 미디어 관계법처럼 ‘합의 처리하도록 노력한다’로 어정쩡하게 마무리했다. 다만 이번 임시국회에서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하는 데는 의견 일치를 봤다. 하지만 상정을 해도 합의가 안 되면 본회의 통과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역시 언제 처리될지 기약할 수 없다. 은행법 개정안은 현재 4%로 묶여 있는 산업자본과 연기금의 은행 지분 확보 한도를 10%로 높이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법은 보험사의 제조업 자회사 보유 허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출총제 폐지법

제도 이미 사문화… 내일까지 상정 2월 협의처리

‘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을 개정해 자산 10조 원 이상인 대기업이 순(純)자산액의 40%를 초과해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없게 한 제도를 폐지키로 했다. 민주당은 출총제 폐지가 아닌 완화를 주장했지만 이번에 한발 물러서 이번 임시국회 마감일(8일)까지 상정한 뒤 2월에 협의 처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 중 상당수가 출총제 폐지에 동의해 왔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그동안 ‘협상을 위한 반대’를 했다는 시각도 있다.

출총제는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도입됐지만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제도인 데다 기업들의 투자를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참여정부에서도 각종 예외 규정을 둬 사문화(死文化)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FTA 비준안

‘이른 시일 안에’ 단서 붙였지만 민주당 주장 관철

‘전기톱 국회’의 단초를 제공했던 사안이다. 이번에 ‘미국 새 정부 출범 이후 이른 시일 안에 협의 처리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한나라당은 버락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한국이 선(先)비준해야 한다며 당정 태스크포스(TF)까지 구성하고 상임위 상정을 밀어붙였지만 결국 민주당 주장이 반영된 셈이다. ‘이른 시일 안에’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야권은 피해산업 대책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어 협의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사회개혁법안

통신비밀법-떼법 방지법 등 2월 임시국회로 넘겨

통신비밀보호법,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 북한인권법, 초중등교육법 등 10건이다. 여야는 2월 임시국회에 일괄 상정하되 ‘합의 처리를 위해 노력한다’고 합의했다. 미디어 관계법 등과 마찬가지로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중점 법안으로 분류해 입법을 추진해 왔지만 이번에 제동이 걸렸다. 통비법은 17대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사항으로 범죄 예방을 위해 제한적인 감청을 허용한 것이다.

집시법은 시위 때 복면 착용을 금지하고 쇠파이프 등 폭력시위용 물품 제조나 운반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직선거 3법

여야 동수로 정개특위 구성… 다음달 1일 처리

재외국민에게 선거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주민투표법 국민투표법 개정안이다. 여야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해 논의한 뒤 다음 달 1일 합의 처리하기로 했다. 2007년 6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 작년 말까지 개정해야 했지만 시기가 늦춰진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 법안들이 이미 행정안전위원회에 발의된 만큼 해당 상임위에서 심사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향후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중대 사안이어서 특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맞섰다. 행안위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의 수가 절반을 넘지만 특위는 여야 동수로 구성된다. 민주당에 유리한 쪽으로 결론이 난 셈이다.

기타법안 처리

모레 임시국회 소집 비쟁점법안 등 98건 처리

공무원의 종교 차별을 금지하는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또 위헌 결정을 받은 양벌 규정 280여 건은 2월 임시국회에서 협의 처리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민주당이 중점 추진법안으로 제시했던 사면법 등 22건은 8일까지 상정한 뒤 2월에 합의 처리하기로 했다. 여야는 9일 임시국회를 별도로 소집해 한나라당이 추진했던 85개 법안 중 비(非)쟁점 법안 58건과 법사위에 계류 중인 40건가량도 처리하기로 했다.


▲ 동아닷컴 신세기, 정주희 기자

▼‘법안 전쟁’ 끝낸 한나라 - 민주 이해득실▼

한나라, 정국 주도권 잃고 친이 - 친박 균열 심화

민주, 내부갈등 접고 결속… ‘폭력 이미지’ 오점

6일 입법전쟁이 일단 막을 내린 가운데 여야가 득실 계산에 분주하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실력 저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협상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점에서 힘의 논리에 의한 강압적 의회정치 풍토를 개선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며 자위하는 분위기다. 홍준표 원내대표는 여야 합의문에 대해 “80점 이상 된다고 본다”라고 했다. 하지만 당내에선 이번 ‘입법전쟁’을 거치며 정국 운영의 주도권을 잃었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핵심 쟁점이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과 미디어 관계법안 등의 처리 시기와 방법을 대부분 민주당에 양보해 2월 이후 이들 법안 처리에 적지 않은 부담을 떠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친이(親李) 주류와 친박(親朴)계의 내부 갈등이 협상 막판에 불거지면서 향후 더 큰 분열에 대한 우려를 심은 것도 손실이라는 게 당 관계자들의 얘기다.

반면 민주당은 방송법을 비롯한 미디어 관계법안 처리 저지를 사실상 이뤘다는 가시적 성과 말고도 이번 사태를 통해 내부 결속력이 강화됐다는 것을 가장 큰 소득으로 자체 평가하고 있다. 특히 이번 본회의장 점거 농성 내내 82명 전원에 가까운 의원들이 수시로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단결의 강도를 높였다는 것이다.

야당으로서의 존재감과 위상을 어느 정도 확립한 것도 당 관계자들이 꼽는 수확이다. 당 고위 관계자는 “향후 한나라당에는 물론, 국민에게도 민주당의 목소리가 무시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협상 결과에 대해 “70점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국민에게 ‘불법’ ‘폭력’ ‘떼쓰기’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된 것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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