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체제 변화기에 군복차림 성명’ 10년전과 판박이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월 19일 02시 58분



강한 어조로 중대성 부각-긴장감 고조

‘美관심유도-南압박’ 철저히 계산한 듯


북한 인민군 군복을 입은 총참모부 대변인이 대남 비난 성명을 위해 이례적으로 TV에 나타났던 1998년 12월과 2009년 1월의 북한 주변 상황은 여러 측면에서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남한에서 각각 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1년을 전후한 시점이다. 5년마다 실시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통해 김정일 국방위원장 체제 1기와 3기가 시작되는 해였고, 핵 문제 해결을 놓고 북한과 미국이 새로운 줄다리기를 시작하는 고비였다.

그래서 이번 북한의 대남, 대미 공세는 ‘전환기’를 돌파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고도의 계산된 몸부림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체제유지를 위한 전방위 몸부림=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자신들이 ‘전면 대결 태세’에 진입하게 된 모든 책임을 이명박 정부에 돌렸다.

이 성명은 모두에 이 대통령의 신년 국정연설을 “민족적 화해와 단합에 대한 노골적인 부정이고 6·15통일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공공연한 대결선언”이라고 주장했다. 또 남한이 육해공 전면에서 군사적 도발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에 대응한 자위력의 확보를 위해 ‘혁명적 무장력’의 △전면 대결 태세 △강력한 군사적 대응조치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철폐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차기 행정부 출범을 3일 앞둔 미묘한 시점에 외무성 대변인 성명과 함께 대남 무력대응을 시사한 것은 이 같은 대남 공세 역시 미국의 관심을 끌려는 ‘대미(對美)용’임을 시사한다.

이번 잇단 성명 공세에는 ‘대내(對內)용’ 성격도 강하다. 이번 조치로 김 위원장의 건재를 알리면서 군부도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과시했다.

북한 내부에서 김 위원장의 후계자 지명설이 나오고 정부의 시장 단속에 인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상황도 북한 지도부가 대남 긴장강화를 통해 대내 단속을 노릴 수밖에 없는 유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북한이 6·15공동선언실천 북측위원회 교직원분과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남한 정부가 도덕 교과서에서 북한에 우호적인 기술을 빼도록 한 것을 “동족 적대의식을 고취하는 것”이라고 비난한 것은 남한 내 보수와 진보 진영의 ‘남남갈등’을 노린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 핵군축 협상에 무게 싣나?=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조선중앙통신 문답은 여러모로 13일의 담화와 비교된다. 13일 대변인 담화에서는 “우리가 9·19공동성명에 동의한 것은 비핵화를 통한 관계개선이 아니라 바로 관계정상화를 통한 비핵화”라고 했다.

하지만 이번엔 “설사 조미-관계가 외교적으로 정상화된다 해도 미국의 핵위협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우리의 핵 보유 지위는 추호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일 신년 공동사설과 13일 대변인 담화가 미국 차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에 던진 ‘러브 콜’이라면, 이번 문답은 힐러리 클린턴 차기 국무장관과 수전 라이스 차기 유엔대사의 의회 인준청문회를 지켜본 뒤의 대응인 셈이다.

북한은 오바마 정권인수팀이 천명한 ‘강경하고 직접적인(tough and direct) 외교’에서 ‘직접’ 부분에 기대를 걸었겠지만 클린턴 차기 장관은 청문회에서 ‘직접’은 한 차례 언급했을 뿐 ‘강경 대응’만을 거듭 강조했다.

북한으로선 뭔가 미국을 압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판단 아래 ‘핵 포기’ 대신 ‘핵보유국’임을 내세워 핵군축 협상을 주장하게 된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없이는 살아갈 수 있어도 핵 억지력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결국 북한이 믿을 것은 핵무기밖에 없다는 ‘출발점’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는 점에서 당분간 북핵 6자회담은 겉돌 가능성이 크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