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몸만 사려… 정부가 칼 쥐어라”

  • 입력 2009년 2월 4일 03시 01분


與 ‘산업별 구조조정’ 왜 요구하나

채권단 1차 조치 ‘2곳 퇴출 - 14곳 워크아웃’ 그쳐

“각 부처 참여하는 추진단 만들어 고강도 처방” 주문

정부 ‘官주도’ 소극적… 기업도 순순히 따를지 의문

한나라당이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업별 구조조정 방안 카드를 꺼내 든 것은 현행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이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호가 침몰 위기에 처했던 외환위기 때와 달리 지금은 구조조정을 집행할 수단이 제한돼 있고, 기업들이 순순히 따를지도 의문이어서 과연 추진력이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채권단 자율 구조조정 한계=은행권은 지난달 20일 111개 건설·조선회사 중 2곳을 퇴출 대상으로, 14곳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대상으로 분류했다. 하지만 두 업종의 부실 정도에 비해 구조조정 대상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은행들로선 구조조정 대상이 늘어날수록 기존 대출은 부실해지고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도 커지게 된다. 이 때문에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나서는 데 몸을 사리고 있는 실정이다.

한나라당 임태희 정책위의장이 3일 “시장의 힘에 의한 구조조정이 한계를 드러냈다”고 말한 것은 이런 상황을 직시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각 부처가 함께 참여하는 ‘구조조정추진단’을 만들어 산업별로 과잉 투자 여부를 평가해 거시적 관점에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는 게 여권 지도부의 생각이다.

지금은 은행들이 건설사 중 재무구조가 부실한 곳을 골라 퇴출이나 워크아웃 대상을 정한다. 반면에 산업 구조조정은 건설 산업을 주택 토목 플랜트 등으로 나눈 뒤 공급과잉 상태인 주택 부문은 규모를 줄이고 토목이나 플랜트는 생산을 늘리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한나라당 정책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때는 정부가 ‘반도체 빅딜’을 성사시켜 과잉투자를 해소했다”며 “은행 자율에만 맡겨 뒀다면 그런 일이 가능했겠느냐”고 말했다.

당 정책위에서는 건설과 조선, 해운, 반도체, 자동차 부문 등을 정부 개입을 통한 고강도 구조조정이 필요한 산업으로 보고 있다.

▽몸 사리는 정부=한나라당과 달리 정부는 관(官) 주도의 산업 구조조정에 소극적이다.

강력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던 외환위기 때와 비교할 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고 구조조정을 집행할 수단도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재정부 육동한 경제정책국장은 “산업 구조조정은 처음 듣는 얘기”라며 “지금 생각으로는 그 방향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경제부처 당국자는 “구조조정의 본질은 기업의 돈줄을 죄는 것”이라며 “민간 주채권은행만 10개가 넘는 상황에서 정부 주도로 구조조정을 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임 의장은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우리은행과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다른 은행들의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원탁회의에서 “1분기(1∼3월)에 경제가 어려워지면 은행과 금융감독원이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냉정하고 과감하게 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해 은행권의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촉구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도 현행 구조조정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힌 만큼 새 경제팀이 공식 출범하면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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